정유광(1955~)
수원출생
현대시선 2015년 동시부문 신인문학상, 창조문학신문 시조부문 신인상, 한국문단 백일장 차상 국제문학 신인 작가상, 글로벌 지도자상 수상, 두레문학 시집 ‘널 사랑했나봐’, 희망의 시인세상 제 3집 참여, 제 10회 전국시조백일장 대상 수상, 서울특별시 문학발전 공로상, 2018 대한교육신문 문학상, 시조부문 대상, 시조집: ‘가슴에 품은 꽃’ ‘가슴에 묻은 진주’ 현 수원문인협회 부회장
해가 녹슨 바퀴를 굴리며
호수 위를 지난다
갈대는 긴 목을 깊이 숙이고
갈바람은 길섶에 붉은 불을 지핀다
나는 눈을 뜨고 떠봐도
얼굴이 뜨겁다
어둠은 지팡이를 짚고
쓰러지듯 밀려온다
시 읽기/ 윤형돈
해질 무렵 홀린 듯 동구 밖을 나서던 유년의 기억이 새롭다. 불거지처럼 붉은 노을 풍경에 어린 넋을 앗기던 시절은 바람 머문 들녘에 저녁밥 짓는 연기가 초가지붕 굴뚝에서 나왔다 석양의 황홀함과 처연함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오늘’이 어느 감성적인 시인에게 보내는 작별인사로 읽힌다. 황혼이 깃 들면 거미줄에 걸린 노을이 애처로운 까닭을 그 때는 왜 몰랐을까? 노인과 노을은 황혼을 닮았다 ‘녹슨 바퀴를 굴리며’ 호수 위를 지나는 저녁 해, 호수에 얼비친 노을은 뜨는 해와 지는 해를 동시에 쓸쓸히 붙안고 뉘엿뉘엿 하루를 마감한다. 어느 지점에서 굴러 떨어질까? 아니, 어느 시점에서 하직할까?
여명과 석양, 해돋이와 해넘이, 창세기와 묵시록, 밀물과 썰물 해가 뜨고 해가 지고 세월은 그렇게 유수와 같이 행복과 눈물을 싣고 잘도 흘러만 간다 한 계절이 다른 계절로 바뀌고 시인은 나이든 것을 기억하지 못 하는데, 언제 아이들은 저렇게 나이가 들었나? 그들이 어렸을 때가 바로 어제가 아닌가?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또 하루가 지나간다. 얘가 내가 안고 다니던 그 딸아이인가? 이 청년이, 뛰어 놀던 그 장난꾸러기였던가?
썬라이즈 썬셋(Sunrise, Sunset)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 지붕 위에서 누군가를 위해 사랑의 바이올린을 켠다. 그녀는 온몸으로 노을을 헤엄치면서 해를 껴안고 선율과 함께 지평선 저 너머로 사라질 태세다 언제부터 ‘갈대는 긴 목을 깊이 숙이고’ 속으로 조용히 울고만 있었을까? 사랑을 잃고 우는 마음은 갈대의 순정을 노래하라! 갈바람은 길섶에 서풍부四風賦를 써놓고 사라질세라 마지막 ‘붉은 불을 지핀다.’
그런 지경에 놓인 시인은 ‘눈을 뜨고 떠봐도 얼굴이 뜨겁다’고 한다. 젊은 날에 저 불타는 ‘붉은 노을’을 노래한 기억 때문일까? ‘난 너를 사랑해 이 세상은 너 뿐이야 소리쳐 부르지만 저 대답 없는 노을만 붉게 타는데’ 그 뜨거웠던 추억에 아름다운 그대 모습이 비친다. 땅거미 스멀스멀 어둠이 어느새 황혼의 ‘지팡이를 짚고’ 쓰러지듯 밀려온다. 일몰의 해는 지금 기대를 뿌리치고 고독의 손수건을 흔들며 어디론가 떠나려 한다. 노인의 유모차를 밀고 ‘녹슨 바퀴를 굴리며’ 어디로 향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