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남주는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 주변 곳곳에 널린 담벼락과 나눔 그리고 차별에 관해 이야기하며, 결국 삼팔선을 만드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이라는 의미의 ’시(詩)를 남겼다. 지금 경기도에서 그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은 경기도 직위의 정점에 서 있는 추미애 경기도지사다.
추미애 경기지사의 폭력은 사람들 간에 한잔하다가 휘두르는 폭력의 정도가 아니다. 아침이면 사과하고 넘어갈 수 있는 폭력의 정도가 아니라. 사람을 말려 죽이는 폭력이다. 버스 지원비를 삭감하고, 출산지원비를 삭감하고, 간병인 지원비를 삭감하는 것들이 진정한 폭력이다.
경기도지사 취임 이후, 한 달 만에 경기도의 다음 예산이 비었다며, 일단 삭감부터 하고 보는 것이 폭력이 아니라면 무엇이 폭력인가. 결국 세금으로 자신을 위해 47평 아파트를 얻고, 차를 바꾸는 일에는 예산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면서, 도민을 위해 사용하기로 한, 약속된 예산을, 경기도의회 의원들과 논의도 없이 삭감하는 일은 분명 직위를 가진 자가, 직위가 없는 경기도민에 삼팔선을 그어놓고, 작심하고 휘두르는 폭력이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국가나 거대단체가 휘두르는 폭력의 형태는 꼭 군인이 동원되거나, 경찰이 사용되는 폭력만 있는 것이 아니다. 권력의 정점에서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나와 다르다며, 다름을 고쳐보겠다며 우격다짐을 벌이는 행위가 폭력이다. 권력자의 우격다짐에는 예산권도 있고, 집행권도 있어 휘두르는 자는 자기 생각의 한계에 맞춰 휘두르지만, 도민의 우격다짐에는 한 끼를 절약해 버티는 것이 고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도민이 추미애 경기지사에게 절대 지지 않는 이유는 시대를 살아가는 주체가 추미애 지사가 아니고 경기도민이기 때문이다. 도민이 아프면 백배는 더 아파해야 할 도지사가 자신의 거처는 챙기는 면서, 자신의 마차는 우선 챙기면서 도민의 아픈 손가락 예산을 잘라버리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추미애 도지사와 경기도민 간에 그어져 있는 삼팔선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삼팔선은 결코 경기도민이 만든 선이 아니다. 입으로는 겸손을 내세우며, 변명하지만. 속으로는 스스로가 위대하고, 현명하다며 자신을 용서하고,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안해 왔던 삶이, 스스로를 속이는 행위다. 그리고 그 행위 어디에도 도민의 삶은 없었다. 오직 정치인 추미애의 삶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 경기도의 예산삭감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치 자신이 목민심서에 나오는 좋은 정치인이라고 환상의 벽을 세우고 그 속에 취해서 휘두르는 칼날에 지쳐가는 경기도민의 삶은 간단하지 않다. 고단하고, 길게 이어지는 경기도민의 삶은 분명 추미애와는 다르지만, 손이 필요할 때 잡을 줄 알고, 손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삶에 어느 날, 정치인 추미애가 나타나 하는 일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추미애 경기도지사의 예산 칼날에 맞으면 맞을수록 단단해지는 사람도 경기도민이며, 두들겨지고 또 두들겨지면서 시퍼런 날을 세우는 사람들도 경기도민이다. 권력자의 폭력에 굴하지 않고 몇 번이고 살아남았던 역사의 산증인이 경기도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