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천시 율면 총곡리에서 4남 2녀중 막내로 태어나 이천 제일고 축산과를 졸업하였다
1973년에 삼성전자에 입사하여 20여년을 다녔으며 1980년에 문학동호회 초대회장과 현회원이며 2001년 ‘문예사조’로 등단하고 삶의 현장을 중국 천진으로 이동하여 현재까지 사업을 하고 있다 만학을 하여 서울 디지털대학교 중국학과를 2014년에 졸업하였으며 현재 중국 천진 천민포장 동사장임. 저서 2016년 제 1시집 ‘흐르는 물처럼’ 출간함. 현재, 한국문인협회, 수원문인협회, 문예사조, 한국문학예술, 청맥문학회 회원임.
아무 내색도 없이
물방울이 모여모여 무리를 이루고
부딪쳐 구르다
먼 행로 제쳐두고
이끼와 술래놀이도 하며
자갈과도 입 맞추며 빛바랜 구슬처럼
형체가 있는 듯 없는 듯
위에서 아래로 소리 없이 흐른다
냇물의 끝을 향하여
어느새 巨山이 되어서는
모래, 자갈, 수초, 이끼와 한 몸이 되어
부딪치다 부딪쳐 구르다가
고운체로 정화되어
고진(苦溱)한 행로를 다하더니
어느새 시련도 잊은 채
大海에 우뚝 서 있다
오를 것 없는 大川
하늘과 어우러져
그대와 내가 흐르는 물처럼
그 안에서 맴돌고 있다.
시 읽기/ 윤형돈
물은 원초적인 에너지와 생명력의 근원이다.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여 비가 되고 구름이 되고 얼어서 얼음이 되는 것은 자연계의 순환이지만, 그 원형은 도무지 잃는 법이 없다. ‘상선약수(上善若水)’는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르는 삶이 좋다고 말한다. 필자의 고향인 이천은 ‘이섭대천(利涉大川)’이란 말에서 유래되었는데, ‘학문과 덕을 쌓고 험난한 과정의 대천(大川)을 건너 큰 공을 세우면 천하가 이롭게 된다.’는 좋은 뜻을 갖고 있다. 더욱이 고향의 원천인 총곡리 마을엔 맑고 깨끗한 개울물이 있어 시인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필자가 유년시절에 겪은 시골 체험은 시심 전반에 녹아 흐른다. 내와 개울물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발가벗은 추억을 소환했음에 틀림없다. 따라서 이 시의 발원인 제 1연에서 ‘아무 내색도 없이’ ‘물방울이 모여 무리를 이루고 부딪쳐 구르며 위에서 아래로 소리 없이 흐른다.’로 귀결되는 표현은 모두 진득한 체험의 산물인 것이다.
물의 행로는 냇물에서 大海로 나가지만, 잠시 ‘먼 행로 제쳐두고’ 이끼와 술래잡기를 하거나 자갈과도 수시로 입 맞추며 몸을 맡기더니 ‘빛바랜 구슬처럼’ 영롱한 기운을 낳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 같은 ‘수중 유희’는 대개 형체가 있는 듯 없는 듯 행해지게 마련이다. ‘냇물의 끝을 향하여’ 흐르다 보면 도중에 만난 모래, 자갈, 수초, 이끼 무리를 거느리는 巨山의 거물이 되고 만다. 때론 격류로 ‘부딪치다 부딪쳐 구르는’ 연단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가는 올로 촘촘하게 짠 ‘고운체로 정화’된 후, 보다 많은 고통의 여정인 ‘고진한 행로’를 거쳐 드디어 너른 가슴의 大海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냇물에서 바다까지 훗날, 바다가 울 것을 생각하고 그렇게 ‘흐르는 물처럼’ 달려왔다!
그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시인이 직면한 시대상은 맞서고 뒤틀리면서 소용돌이칠 때도 많았다. 그러나 더 이상 ‘오를 것 없는 大川’은 무엇일까? 태초의 수원지(水源池)인 하늘과 어우러져 더 나가지도 않고 그냥 동심원으로 맴돌고 있을 뿐인가? 그러다 결국은 수만리 밖 넓고 깨끗한 하늘에서 마침내 ‘흐르는 물처럼’ 처음 떠난 고향의 내(川)와 조우하게 되지는 않을까?
뒤돌아보면 저만치 유년의 개울물이 보이고 발가벗고 헤엄치며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던 그리움이 누워있다. 가파른 생의 조수가 대망의 ‘이섭대천(利涉大川)’을 다 건너기 무섭게 살같이 빠른 광음은 시나브로 유수와 같이 흐른다. 그렇다고 또 다시 ‘아무 내색도 없이’ 어느 변방의 낯선 하천을 무심코 걸을 수는 없다. 그나저나 제 3연의 마지막 구절 ‘그 안에서 맴돌고 있다’는 ‘흐르는 물처럼‘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계속 흐르지 않고 한 곳에 그리 오래 머물러 맴 돌고만 있다면, 그것은 당장 물의 거처가 수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