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택 창작판소리 50주년 기념 공연 ‘안중근’ 22일·27일 개최

  • 등록 2024.12.19 15: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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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판소리 ‘안중근’… 안중근, 제국 일본의 심장을 쏘다

임진택 창작판소리 50주년 기념 공연 ‘안중근’이 오는 12월 22일(일)과 27일(금) 노무현시민센터 다목적홀에서 관객들을 맞는다.
 

2024 창작판소리 ‘안중근’ 공연 포스터

▲ 2024 창작판소리 ‘안중근’ 공연 포스터

 

지난 2021년 6월 창작판소리 ‘안중근’ 초연 공연에서 열창하는 명창 임진택

▲ 지난 2021년 6월 창작판소리 ‘안중근’ 초연 공연에서 열창하는 명창 임진택

 

판소리 사설을 쓰고 작창하고 직접 소리하는 임진택 명창

▲ 판소리 사설을 쓰고 작창하고 직접 소리하는 임진택 명창

 

 

박불똥 화백의 안중근 포토꼴라주 작품

▲ 박불똥 화백의 안중근 포토꼴라주 작품

 

창작판소리 ‘안중근’은 만고의 영웅 대한국인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판소리로 엮은 작품으로, 명창이자 작가인 임진택이 안중근 의사의 옥중 자서전인 ‘안응칠 역사’를 기본으로 사설을 집필하고 소리를 붙여 작창했다.

안중근은 누구인가?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경 중국의 하얼빈 역에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대한 침략의 원흉이자 아시아인의 공공의 적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하는 순간이었다. 현장에서 바로 체포된 안중근 의사는 뤼순감옥에 수감돼 1910년 2월 7일부터 모두 여섯 번의 공판 끝에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항소를 거부하고 그해 3월 26일(향년 31세)에 순국했다.

안중근 의사는 왜 이토를 쏘았을까?

안중근은 공판정에서 왜 이토를 시살했느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무려 14가지 이토의 죄상을 폭로했다. 요약하면 무력으로 대한을 침탈하고 강제로 국권을 빼앗았으며 결국은 동양의 평화를 파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안중근의 명쾌한 답변이었다. 안중근은 대한 의군 참모중장 자격으로 이토를 처단한 것이며, 거사의 진정한 목적과 의미는 단순히 한 침략원흉의 제거가 아닌 제국 일본의 각성과 대한의 독립, 나아가 동양의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다시 조명되는 안중근의 원대한 사상

사형 집행을 앞두고 안중근이 집필한 책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의 자서전이랄 수 있는 ‘안응칠 역사’이고, 다른 하나는 미완성인 채 후대에 남겨진 ‘동양평화론’이다.

그가 미완성인채로 남긴 ‘동양평화론’은 오늘날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라는 시대적 화두의 관점에서 보면 유럽연합(EU)보다 80년이나 앞선 선구적인 발상이었다. 오늘날 일본이 사죄와 반성은커녕 역사를 왜곡하고 자기네 평화헌법마저 부정하면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군국주의적 경향을 노골적으로 내비치고 있는 작태에 직면해 우리가 안중근 의사의 사상을 되짚어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창작판소리 ‘안중근’ 줄거리

창작판소리 ‘안중근’은 안중근 의사가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안응칠로 태어나 을사늑약에 비분강개하고 결국 조국이 사라진 시대에 의병활동에 투신해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계획하고 하얼빈 의거를 결행에 옮기기까지의 삶의 궤적과 일본인이 차려놓은 법정에서 일본제국의 침략성과 대한 독립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이른바 ‘안중근 공판전쟁’을 수행하고, 끝내 사형선고를 받아 뤼순감옥에서 유언을 남기고 죽음을 맞는 과정을 이야기와 소리로 엮어나간 작품이다.

임진택 명창은 왜 판소리 ‘안중근’을 창작했나?

1945년 해방 직후 박동실 명창이 이준, 안중근, 윤봉길 세 분의 의거를 담은 ‘열사가’라는 판소리를 창작한 바 있다. 허나 박동실 명창이 6.25 때 월북함으로써 그가 남긴 열사가는 오랫동안 금기시됐으며, 또한 열사가 안에 안중근 대목은 불과 20분 정도 분량으로 온전한 한바탕의 소리로서는 부족함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 박동실 선생의 안중근 판소리는 지금 잘 불리지 않는다.

하지만 작금의 급박한 한반도 및 동아시아 정세로 볼 때 안중근이 과거의 인물로만 박제돼서는 안될 것이며, 따라서 이를 뛰어넘는 창조적 예술정신이 요구된다. 안중근 전쟁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안중근의 부활과 ‘안중근 판소리’의 부활은 시대적 소명이다. 창궐하는 일본 군국주의와 열강의 야합에 맞서 싸우는 안중근이라는 대한국인을 우리시대의 새로운 의사(義士)로 부활시키는 작업을 개시해야 한다.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유언대로 그가 바라는 진정한 독립, 하나의 조국과 동아시아의 평화를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창작판소리 ‘안중근’에 담긴 새로운 사실들

공연시간 90분이 소요되는 임진택의 창작판소리 ‘안중근’은 기존 박동실 명창의 안중근 열사가와는 분량에서부터 차이가 있으며, 이 작품의 내용과 사설은 기본적으로 안중근이 직접 집필한 자서전 ‘안응칠 역사’에 바탕하고 있다.

‘안응칠 역사’라는 자서전을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안중근이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으며, 사형 집행 앞에서도 초연했던 그의 기상은 타고난 장부 기질과 더불어 삶과 죽음, 현세와 내세를 초월한 그의 깊은 신앙에 연관돼 있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 안중근은 ‘의병’ 활동으로부터 시작해서 질적으로 발전한 ‘독립군’ 조직을 결성한 최초의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안중근은 러시아령인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점으로 기존의 한국 의병 조직들을 연합시켜 두만강을 넘어 본토로 진공을 시도한 최초의 해외독립군인 대한의군을 결성했고, 이는 함경도 회령 부근에서 일본군을 사살하고 수비대를 점거한 최초의 전승 부대였다.

그 다음, 안중근이 일본검사관 심문이나 재판정 진술에서도 숨겼던 어떤 사실, 나아가 옥중에서 집필한 자서전에서도 은밀히 감춰 놓았던 어떤 사실들을 이번 창작판소리 ‘안중근’에서 드러내 밝힌다. 임진택은 이 작품에서 ‘안중근과 안창호와의 관계’, 그리고 ‘안중근과 최재형과의 관계’를 흥미롭고도 설득력 있게 밝혀내고 있다.

창작판소리 ‘안중근’에 구사된 기법과 미학

원래 전통판소리는 소리를 펼치는 한 사람의 광대와 북을 쳐주는 한 사람의 고수가 등장하는 소리판 양식이다. 그런데 3년전 창작판소리 ‘안중근’을 완성해 공연할 때 그 양식은 일종의 입체창 방식이었다. 이번에는 원래의 의도대로 광대가 혼자 창하고 한 사람의 고수가 북을 치는 전통 소리판 양식 그대로 재현한다. 90분이 넘는 공연시간을 혼자서 다 담당해야 하니 ‘완창 판소리’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지난번 시도한 입체창 방식의 공연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므로 이번 공연이 창작판소리 ‘안중근’의 진정한 초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작판소리에서 청중들이 관심 기울여야 할 것은 우선 사설의 문학적 수준(완성도)이다. 그리고 그 사설을 어떤 장단에다 어떻게 말을 놓아가는지 ‘말붙임’의 재미를 공유하는 일이다. 그 다음에 비로소 광대의 소리 기량이 얼마나 되는지 느끼고 평가하면서 반응하는 일이다. 그리해 새로 창작된 판소리 ‘안중근’이 옛날 판소리 ‘춘향가’나 ‘흥보가’에 비교해 어떤 친근함과 신선함을 주는지 비교해보고, 나아가 옛판소리처럼 향후 널리 불리고 전승돼 나갈만한지 평가하고 기대해보는 일이다.

판소리 ‘안중근’의 절정이랄 수 있는 대목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위해 안중근이 거동하는 10월 21일 밤부터 26일 아침까지의 연속된 긴박한 장면이다. 거사 결정과 작전 수립, 동지들과 접촉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의 이동, 그리고 상황에 따른 계획의 변경, 하얼빈역에서의 과감하면서도 단호한 저격이 이뤄지는 엿새간의 장면이 아니리(가락을 붙이지 않고 이야기하듯 줄거리를 설명하는 부분) 없이 소리로만, 장단 변화로만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이동, 그리고 비장함과 긴박감, 초조함과 긴장감, 통쾌함과 의연함을 담아 펼쳐내는 20분 분량의 장면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이 표현된다.

판소리와 사진·그림·영상의 만남

이번 공연에는 화가 박불똥이 미술감독을 맡아 작화에 나섰다. 일반적으로 판소리 무대의 배경으로 쓰이는 병풍 대신에 시대를 담아내는 사진 영상을 기본으로 사용함에 더해, 특히 박불똥 화가의 포토콜라주 작품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박불똥 화백은 ‘안응칠 역사’를 자신만의 리얼리즘으로 포착한 시각 이미지들을 분해 조립하고 유기적으로 엮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특히 정지된 하나의 이미지 위에 다른 이미지가 중첩되고 반복과 복제되는 작업은 동영상을 보는 듯한 율동감마저 자아낸다.

이은희 기자 jcomaqkq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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