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시의 입맞춤 남몰래
화령전 붉은 기둥에 새겨놓고
나비 날아간 그 꽃밭 사잇길
누가 볼세라 잠 못 든 어린 날
최동호(1948~)시인, 평론가
수원 태생으로 고려대 대학원 현대문학박사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경남대 석좌교수
제 41대 한국 시인협회장 역임, 정지용시인 연구의 최고 권위자이며, ‘불꽃비단벌레’ ‘얼음 얼굴’ ‘수원남문언덕’ ‘공놀이하는 달마’ 특히 ‘병속의 바다’는 러시아판으로 최근 출판.
시읽기/ 윤형돈
성곽도시 수원 화성행궁 안에 정조의 어진을 모셔놓은 ‘화령전’이 있어 지나는 길손의 발걸음을 수시로 멈추게 한다. 화성에서 ‘華’자와 <시경>의 ‘돌아가 부모에게 문안하리라(歸寧父母)’라는 구절에서 ’寜‘자를 따서 이름 붙였다는 안내판 전언에 부응이라도 하듯 존경심의 발로인 하마비(下馬碑)가 우람한 서체로 과거와 현재의 이정표를 찍는다. 아뿔싸, 돌에 앉은 나비는 꽃보다 돌이 아름답다고 했던가! 언어를 넘어서는 그 어떤 것을 행복으로 삼는 시인이 이 아름다운 순간의 정황을 놓칠 리 없다.
우선, ’첫사랑의 입맞춤‘이 아니라 ’첫사랑 시의 입맞춤‘을 교묘히 배치해 놓은 첫 행에 탄성을 자아낸다. 첫사랑은 맨 처음 느끼는 풋사랑인지라 변하기 쉽고 오래 가지 않는 속성이 있다. 詩도 잉태하여 산고를 거친 후에 열매 맺는 이치를 깨달은 화자는 불변의 ’화령전 붉은 기둥에‘ 사랑의 맹세를 새겨 놓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 틈에 날아간 사랑나비의 그 꽃밭 왕래가 아쉽고 그리워 불면의 밤을 지새웠다는 것. 참으로 누구라도 볼 빨간 사춘기에 겪었던 봄날 아침의 뇌우(雷雨) 같던 첫사랑의 말로가 아니던가!
누가 볼세라, 행여나 다칠까봐 숨죽여 가슴 졸이던 일시적인 마음의 행로가 큰 길로 이어지는 작은 길에서 잠깐 통과의례로 머물렀다 마침내 궁극의 경지인 ‘병 속의 바다’로 나아갔을 것이다. 태(胎)를 묻은 수원에 53년 만에 귀향한 시인의 귀거래사는 저리도 그가 초입에 다녔던 남창초등학교의 ‘방과 후 책가방 도시락통의 숟가락 소리’같은 유년의 ‘수원 남문 언덕’에서 불어오던 습습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통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첫사랑 시의 입맞춤’은 ‘남몰래’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