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 출생. 아주대 대학원 국문학 박사 1984년 세종숭모제전 전국시조백일장 장원으로 등단, ‘탐하다’ ‘허공우물’ ‘저녁의 뒷모습’ ‘비의 후문’ 등의 시집이 있으며 중앙시조대상, 현대불교문화상, 이영도 시조문학상, 한국시조대상 등을 수상함
슬픈 고무신
고무신이 벗겨진 채 소녀는 끌려갔네
부를수록 집은 멀고 총칼은 목에 닿고
악문 채 몸을 봉해도 군홧발에 녹아갔네
총을 물고 울었건만 목숨은 욕辱을 넘어
헐은 몸 닦고 닦아 옛집 앞에 섰건만
코 베인 고무신처럼 생이 자꾸 벗겨지네
시 읽기/ 윤형돈
역사의 아픔이 녹아있는 시인의 시를 읽기 전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집을 살펴보았다. ‘짐짝 끌려가듯 끌려갈 때는 정말 기가 막혀서 펑펑 울었고 그 짐승 놈들은 마음대로 쓰고 싶으면 쓰고 고장이 나서 병이 나면 버리고 죽이고 ‘언제든지 도망가면 산다.‘는 생각뿐이었으며 하혈을 자꾸 해도 그 짓을 계속해야만 했다’는 피지배 식민국의 반인륜적 참상들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다.
“끌고 가가 지고 칼로 가지고 다리 긋고 지금 60년 돼도 지금 흉터가 웬만큼 크거든요. 발로 차고 찢고 전기고문까지 당했습니다. 저는 죽어도 이 역사만은 반드시 남기고 사죄와 배상하도록 저는 지켜보고 있을 것이고 한국이 끝날 때까지 저는 우리 정부가 끝까지 돌봐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남기고 싶습니다.”
이용수 할머니“여러분 우리가 죽지만은 우리 후세들이 있어서 마음은 놓이지만 또 후세들이 우리처럼 될까 봐 가슴이 터져요, 나는. 여러분이 나라를 꼭 잘 지키기를 바래보고 우리하고 꼭 같이 협조해서 일본놈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강일출 할머니 만 14세였던 1940년 위안부로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었던 김복동 할머니가 최근 별세하셨다 그녀는 후에 거침없는 불굴의 활동가로 수십 년간 침묵을 깨고 가장 먼저 피해 사실을 공개한 희생자로 여생을 아픈 역사의 증인이요, 인권운동가로 활동해 오신 분이니 위와 맥락을 같이 한다
1950년 전운이 감돌 무렵에 소녀들은 적삼치마에 검정고무신을 신었다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니며 정신없이 놀 나이에 ‘고무신이 벗겨진 채’ 짐짝처럼 끌려가 ‘총칼 군홧발’에 짓밟혔으니 그 얼마나 슬프고도 얄궂은 운명인가! 이름 모를 정글의 오지로 끌려가 유린당할 때, 이를 악물고 ‘몸을 봉해도’ 능욕을 일삼으니 입에 총칼을 물고 죽은 목숨을 살아야 했다. 마침내 다 헐어 닳고 해진 상처투성이의 만신창이로 ‘옛집 앞에’ 귀향했건만, 죽어도 못 푸는 철천지 원수의 恨은 끌려갈 때 ‘코 베인 고무신처럼’ 서러운 생을 원망하듯 자꾸 벗겨지려 한다. 시인은 행간 곳곳에 못다 씻은 치욕과 울혈을 최대한 절제하며 한 여성으로서 동질의 아픔을 내면으로 삭여내고 있다.
김복동 할머니의 유언은 ‘끝까지 싸워 달라’였다. 남은 23명의 할머니들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우리가 오랫동안 기억하고 멈추지 말아야 할 당위의 약속인 것이며 후대에게 큰 울림과 교훈을 줄 것이다. “故 김복동 할머니, 부디 고운 한복에 꽃고무신 신고 나비되어 훨훨 평화의 소녀상 어루만지듯 지상과 천상을 왕림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