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에/ 김종길

  • 등록 2019.02.07 11:04:54
크게보기

김종길(1926~2017)

시인이며 영문학자
경북 안동 출생으로 194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문’이 당선되어 등단
‘성탄제’ ‘하회에서’ ‘황사현상’ 등의 시집이 있으며, 한국시인협회장과 고려대 교수 역임.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시 읽기/ 윤형돈

묵은 해를 떨쳐버리고 새해를 맞이하는 구정 달력은 산수유 열매처럼 빨간 숫자가 연달아 달려 있어 세시풍속의 큰 명절임을 직감한다. 전통적인 부성애로 성탄의 의미를 되새긴 ‘성탄제‘에 이어 노시인의 새해맞이 당부가 돋보이는 이 시의 각 연 말미에는 ’~할 일이다‘ 식의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부드럽게 독려하는 은근(慇懃)의 각운(脚韻)이 깔려있다.

‘낯설음’의 대명사인 설은 항상 사계절의 끝자락인 겨울의 추위 속에 놓여 있어 새해라는 시간 질서에 통합되기 위해서는 늘 조심하고 삼가라는 것. 겨울 무지개 같은 시인의 당부는 ‘병 없이 앓는/ 안동댐 민속촌의 헛제사밥 같은 /그런 것들을 시랍시고 쓰지는 말라‘고 언어를 희롱하고 우롱하고 조롱하는 사이비 도롱뇽 문학인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아무리 추운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들은 왔다갔다 새 봄을 유영하며 제 아무리 꽁꽁 언 미나리 깡에도 파릇한 새싹은 돋아나 입맛을 돋우나니, 더 이상 과로사(過勞死)의 죽은 꿈을 꾸거나 은근과 끈기로 밀어붙여 절대 포기하지 말자.

‘따뜻한 한 잔 술’과 ‘국 한 그릇’만으로도 일용할 양식과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축복에 오롯이 감사할 일이며, 떡국 한 그릇 먹고 한 살 나이 더 먹었으니 제발 나잇값도 좀 하고 좀 더 지혜롭게 살아갈 일을 걱정하되, 무엇보다 국민의 안녕과 평안을 저해하는 정치 모리배와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기도할 것이다.

‘어린 것들 잇몸에 고운 이빨’ 나고 어금니 빠진 갈강새 어르신에게도 틀니를 채워 고기 씹는 즐거움을 되찾아 드릴 일이니 구정은 옛정을 회복하고 어루만지는 고향의 노래인 것이다.



관리자 기자
Copyright(c) 2017.04 Kyung-In View. All Rights reserved.

PC버전으로 보기

경인뷰 / 경기 화성시 봉담읍 상리2길 97, 704호(지음프라자) / 제보광고문의 031-226-1040 / E-mail : jkmcoma@hanmail.net 등록번호 경기 아51549호 / 발행인 이은희 / 편집,본부장 전경만 / 등록일: 2017.05.02. 발행일: 2017.06.02. Copyright(c) 2017.04 Kyung-In View.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