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백석(백기행)
1912년 평안북도 정주 여우난골에서 태어남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그 母와 아들’로 당선
1936년 시집 ‘사슴’ 발표 후 ‘子夜’란 기생과 교류함
1938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장안의 화제를 몰고 옴
1945년 조만식 선생 통역비서로 활동
1957년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 발표
1995년 실제 사망
절망
북관(北關)에 계집은 튼튼하다
북관(北關)에 계집은 아름답다
아름답고 튼튼한 계집은 있어서흰
저고리에 붉은 길동을 달어
검정치마에 받쳐 입은 것은
나의 꼭 하나 즐거운 꿈이였드니
어느 아침 계집은
머리에 무거운 동이를 이고
손에 어린 것의 손을 끌고
가파른 언덕길을
숨이 차서 올라갔다
나는 한종일 서러웠다.
시 읽기/ 윤형돈
장안의 내로라하는 시낭송가들이 이생진 시인의 ‘내가 백석이 되어‘라는 시 한 번은 읊을 정도로 많은 문인들에게 사랑받고 저들 입에 수시로 회자(膾炙)되는 이가 백석이다 분단이라는 제약과 굴레의 억압 속에서 탄생한 지조 있고 고결한 작품들이기에 그의 문학은 우리의 역사와 운명을 같이 하면서 고난의 길을 걸어왔다 또한 고난 그 자체를 의연한 지인달사의 풍모로 포용하면서 어설픈 외래어 보다는 번역물에서 조차도 정지용만큼 토속적인 우리 고유어를 적용시키는 비범함과 민족적인 자존심의 품격을 끝까지 견지한 모더니스트 작가로 평가받는다.
이 시는 함흥 영생고보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에 지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정든 고향을 등지고 떠날 수밖에 없는 척박한 현실에 대한 절망감이 행간에 스며있다 첫 행에 연이어 등장하는 ‘북관’은 ‘함경도’를 달리 부르는 말이다 그의 고향은 정작 평안도 정주인데, 지금은 외지에 나와 있는 실향민이다. 타지라는 공간적 배경에서 화자는 현재 고독하고 외로운 상태다 서정시이면서 무언가 줄거리가 있는 서사적 성격을 띠는 이유다.
아름답고 튼실한 북관의 계집은 검정치마에 흰 저고리를 받쳐 입고 붉은 깃동을 달아 화사해 보인다 머리에 인 ‘무거운 동이’는 낭만의 물동이가 아니라 세찬 파고의 고생보따리 일 것이고 그것도 ‘어느 아침에 어린 것들 손을 끌고 가파른 언덕길을 숨이 차서’ 오르고 있다니! 어디론가 급히 가는 여인의 초상이 극도로 감수성이 예민한 시인의 눈에는 한종일 서러운 그림으로 그려졌을 것이다 여기서 백석의 ‘절망’은 ‘꼭 하나 즐거운 꿈’인 북관 계집애의 꿈이 깨어짐에 있었을까 삶의 현장에서 비껴선 그의 시선이 서러울 정도로 차갑고 냉정하다. 북극성은 작은 곰자리에서 가장 밝고 따뜻한 별이라고 한다. 절망의 뿌리에서 더 귀하게 솟는 새로운 희망의 진액, 북촌방향 사람들은 그렇게 시련의 계절을 ‘굳고 정한 갈매나무’처럼 견디고 서러운 운명을 담담하게 그의 첫 시집 제목인 ‘사슴’처럼 오롯이 지켜 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