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 박두진(1916~1998)

  • 등록 2019.03.14 14: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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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난 박두진은 경성사범학교와 우석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39년 정지용의 추천으로 「文章」誌에 시 <香峴> 등 다섯 편이 동시에 실리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1946년 박목월‧조지훈과 함께 공동시집 「靑鹿集」을 펴낸 뒤 ‘청록파 시인’으로 불리며 본격적으로 詩作활동을 했다.



갈대가 날리는 노래다
별과 별에 가 닿아라
지혜는 가라앉아 뿌리 밑에 침묵하고
언어는 이슬방울
사상은 계절풍
믿음은 업고(業苦)
사랑은 피흘림,
영원,-너에의
손짓은
하얀 꽃 갈대꽃
잎에는 피가 묻어
스스로가 갈긴 칼에
선혈(鮮血)이 뛰어 흘러,
갈대가 부르짖는 갈대의 절규다
해와 달 해와 달 뜬 하늘에 가 닿아라
바람이 잠자는,
스스로 침묵하면
갈대는
고독.


시 읽기/ 윤형돈

순수 서정의 근원을 지키려고 애쓴 청록파 3인 중 한 사람인 혜산 박두진은 ‘그리스도와 소박한 자연과 시가 있어서 나는 이제 고독하지 아니합니다.‘라고 고백할 만큼 젊은 시절에 자연과 종교에 심취해 있었다. 다시 말해 그의 시적 형상화에 영향을 준 사상적 기저는 기독교적 구원 의식과 이상 세계였다. 큰 스승 정지용 시백(詩伯)은 그가 등단할 적에 ’朴君의 시적 채취는 무슨 삼림에서 풍기는 식물성의 것이다‘라고 평하고 ’시단에 하나의 신 자연을 소개하여 선자는 법열(法悅) 이상입니다‘라고 극찬했다고 하니 더 이상 말해 무엇 하랴!

미상불, 대중가수 박일남은 ‘사나이 우는 마음’을 ‘갈대의 순정’으로 노래했다지만, 신경림 시인이 획득한 ‘갈대 정서’는 ‘산다는 것은 이렇게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몰랐다‘고 고뇌한다. 인간이란 자고로 너무 자주, 너무 빨리 상처받기 쉬운 ’상한 갈대‘와 같은 존재다. 그러나 그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는 분이 계셔 신앙인은 위로받는다. 온 우주에 편만해 있고 그 위에 초월해 있는 한 법칙의 주재자를 숭앙하는 자에게만 부여되는 고귀한 선물일 터이다. 여기서 ’갈대의 노래‘는 별에 가 닿기를 바라고 ’갈대의 절규’는 하도 깊어 해와 달의 영역인 하늘에 가 닿기를 소원한다. 그럼에도 ‘지혜는 가라앉아’ 뿌리 밑으로 내려가 그것을 얻은 자에게는 생명나무이며 ’지혜로운 자는 위로 향한 생명 길로 말미암는다.’고 했던가!

그렇게 박두진의 혜안은 절대선(絶對善)에서 삶의 궁극적인 가치를 찾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소박한 자연이 아니라 의연하고 강렬한 동적 심상을 불러일으키는 ‘해‘와 같은 ’불 이미지‘를 추구하는 것이다. ‘지혜는 가라앉아 뿌리 밑에 침묵하고’ 있을 때, 언어와 사상과 믿음과 사랑은 모두 역설적인 의미로 귀의하여 영원에의 손짓인 하얀 갈대꽃으로 나부낀다. ‘그 잎에 피가 묻어 선혈(鮮血)’로 흐르면 갈대는 더욱 거칠게 울부짖고야 만다. 그러다 또다시 바람이 잠자고 ‘스스로 침묵하면’ 갈대는 다시 깊은 ‘고독’에 침잠하는 것이다. 마침내 절대고독에 이르면 저 푸른 해원의 하늘 끝을 만질 수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전경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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