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할 당시만 해도 그것이 2차 대전의 시발점이 될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당시 폴란드를 노리고 있었던 나라는 독일뿐만 아니라 러시아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폴란드는 무너질 것이라고 본 나라들이 많았다. 그리고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육군을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진 프랑스가 독일의 남침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독일의 침공에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마지노선이 뚫리자마자 프랑스 파리를 점령한 독일은 프랑스에 ‘비시정부’라는 괴뢰정부를 세웠다. 이후 프랑스의 비시정부는 연합국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성공하고 파리로 진격한 1944년 8월에 사라진다. 전쟁이 끝나고 프랑스 독립에 일등 공신이 된 드골은 비시정부에 협력했던 사람들을 처단했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프랑스 해방 이후, 프랑스는 비시정부와 나치에 협력했거나 자발적 노동을 제공한 프랑스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벌인다. 이때 가장 가혹하게 처벌받은 집단이 바로 언론이다.
나라를 되찾은 드골은 제일 먼저 언론개혁을 시작했다. 지난 1944년 9월, 프랑스 임시정부는 나치 혹은 프랑스의 비시정부에 순종한 언론사들 모두 찾아냈다. 이때 538개의 언론사가 나치 혹은 비시정부에 저항하지 않고 순종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았으며, 이 중 115개의 언론사가 폐쇄 조치를 당했다. 그리고 순종이 아닌 협력에 해당하는 언론사는 재산을 몰수당했으며 언론인은 사형당했다.
드골의 회고록에 의하면 드골이 언론을 첫 번째 상대로 숙청을 한 이유는 언론은 사회를 이끌어 가는 기준으로서 정의로워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비시정부에 근무했었던 공무원과 관료들 거의 전부가 재판을 받고 사형 혹은 무기징역을 받았다. 또한 비시정부 혹은 나치에 협력했었던 예술인들도 사형당하거나 무기징역을 받았으며,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프랑스 내에서는 그 어떤 예술 활동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프랑스는 조국을 배신했던 자들 특히 지식인에 대한 처벌을 감행했다.
우리나라가 꼭 프랑스처럼 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그럼에도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에 근무했거나 친일과 관련 예술 활동을 한 사람 그리고 언론인들은 운 좋게 자신이 처벌받지 않았다고 자랑할 일은 아니다. 같은 식민지 생활을 했더라도 저항하지 않고 순종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지식인들을 재판에 넘긴 나라가 있는가 하면 우리나라처럼 그저 흐지부지 하나 나라도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친일에 앞장섰던 인물들이 법을 따져가며 친일 부역의 재산을 기반으로 아직도 이 땅에 기생하면서 호가호위, 호의호식하며 살아가는 작금의 시대라 할지라도 굳이 친일과 예술을 분리해 업적을 기리자는 말을 하는 것은 또 다른 매국이며 대한독립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분들에 대한 모욕이다.
한국인 이라면 적어도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만든 위대한 사람들에 대해 모독은 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인이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