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헌법 제27조 4항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조항이 있다. 피고인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피고인을 무죄로 본다는 취지다. 이는 사법살인이나 공권력을 함부로 휘두르지 말고 또한 약자를 보호하자는 뜻에서 만들어진 법률 용어다. 이 때문에 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할지라도 최종법원의 판단이 나오기까지 피고인을 죄인 취급할 수 없다.
최근 우리 주변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을 잘 이용하고 있는 사람은 오산시의회의 두 의원이다. 오산시의회의 민주당 소속 정미섭 시의원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고도 지금까지 시의원의 직을 유지하며 공적 활동까지 할 수 있는 이유도 이 무죄추정의 원칙 때문이다. 또한 국민권익위와 경찰에 부패 혐의로 고발까지 당해 현재 수사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 같은 당 소속의 전도현 시의원도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해 아무런 제재 없이 의원 활동을 하고 있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그런데 전도현 의원이 지난달 발의한 언론조례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철저히 무시한 조례다. 자신들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해 의원 활동을 하면서 기자들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할 수 없는 조례를 만들었다.
전도현 의원이 발의한 오산시 언론조례를 보면 “오산시민과 관련된 사실 왜곡, 허위, 과장, 편파보도 등으로 언론중재위에서 확정된 사안이 있는 경우와 조정성립 또는 직권조정을 통해 정정보도를 한 경우, 또는 손해배상 등의 결정이나 이와 관련해 벌금 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우, 시장은 1년간 출입기자의 등록을 취소하고, 행정광고 등 지원을 중단할 수 있다”라는 내용이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것도 기초자치단체 소속 시의원이 이런 반민주적이고 반헌법적인 조례를 만들었다는 자체가 어이가 없지만 사실이다. 모든 언론사의 기자들이 알권리와 진실을 위해 취재한다고 하지만 모든 것이 다 사실이거나 진실은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언론사와 관련된 분쟁에서, 통상적인 최종법원 판결을 보면 대체로 ‘뉴욕 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의 판결을 인용하고 있다.
판결의 내용을 요약하면 언론사의 기자가 오보를 발생했다고 할지라도 취재 과정에서 언론인이 오보를 사실로 믿을 만한 정황이나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고 취재했다면 언론인의 오보는 무죄라는 취지의 판결이다. 지난 몇 년간 있었던 전임 오산시장과 기자들 간의 대법원 판결문의 요지도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의 판결문이 인용됐다.
법원에서 이런 판결을 하는 주된 이유는 설사 오보가 있을지언정 취재를 통한 국민의 알권리가 위축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오보로 인한 피해가 있을 경우를 생각해 언론중재위는 존재한다. 이 때문에 언론중재위는 기사의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피해자 구제를 우선시하며 되도록 정정과 반론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기구다.
그런데 오산 시의원은 언론중재위원회에 계류됐다는 이유만으로 오산시의 행정지원을 중단할 수 있는 조례를 만들었다. 자신들은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보호받으면서 기자들은 그 원칙마저도 보호받지 못하는 조례를 만들었다. 어처구니가 없지만 사실이다.
엄청난 반헌법적 조례를 만든 시의원들의 잣대로만 생각해 본다면 법원에서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시의원과 경찰조사를 목전에 두고 있는 시의원이 참여한 심의 특히 예산심의를 포함해 모든 의원 활동은 중단되어야 하며 여러 심의를 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무효에 해당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헌법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두 의원의 활동을 인정해 주고 법률로 보호해주고 있다. 반면 시의원의 반헌법적 조례에 따라 기자들만 보호받지 못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