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광주 출생
2018년 수원문학 작품상
2018년 수원시 버스 정류장 인문학 글판 선정
수원문학 ‘길 위의 인문학’상 수상
현재 수원문인협회 회원
못 견딜
詩
랍시고 쓰고 있는 동안
술병에
있는 술 다 캐 마신 아버지는 두뇌에 있는 데이터를 뽑아
무인도에 가 계시고
아메리카에 없는
피
흘리는 동백
땅거죽을 벗기고 있는 태양 아래에 있는.
시 읽기/ 윤 형 돈
바이러스 공포로 온 나라가 지리멸렬 형국이다 이것은 무엇인가? 맞다, 평소 시인의 말대로 그것은 시인 자신에 대한 모독이며 중대한 도전이다. 오로지 시만 생각하고 온 몸과 영혼을 시에 투척하는 그에겐 가당찮은 일이다. 그러면서 그의 시 작법은 겸양지덕의 자세를 겸비하고 있다. ‘시랍시고’란 말 자체가 자신의 시 쓰기에 대해 여전히 부족하고 못마땅하게 여기는 반성적 사고이기 때문이다. 죽어라 쓰고 매달리며 못 견뎌 하면서도 늘 부족하게 여기는 마음의 발로가 바로 그를 시 쓰게 하는 동인이요 원동력이 된다.
다시 말해 최소한의 육체로 최대한의 정신적 계발을 도모한다고 할까 그는 육체의 한계를 정신의 가능성으로 극복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기에 그의 또 다른 시구(詩句)처럼 ‘가장 가늘게 속살을 뽑아 미친 듯이 피 섞는 소리’를 내는 저 남도창 같은 심혼의 가락이 엿보이는 것이다. 더욱이 이 시의 부제가 ‘금남로에서’인 것을 보면 오월 광주에 도사린 그 비의(秘意)는 은연중 비장미를 더해준다.
그 와중에 등장하는 ‘아버지’란 존재는 한 시대의 고뇌를 다 캐 마실 정도로 탐닉하시고 ‘두뇌에 있는 데이터를 뽑아’ 무인도에 가 계시다고 한다. ‘두뇌에 있는 데이터’는 일상적인 생활필수품과 같은 핍진한 생계요소일 수도 있다. 두뇌 골수까지 사무치셨으니 백지상태로 무주공산의 무인도에 들어가셨을 법도 하다. 이 시에서 ‘피 흘리는 동백’의 사연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지만, 행간 곳곳에 숨 막히는 은유로 포진해 있다.
‘아메리카에 없는’ 조선의 맥박이 고동치는 순수 혈통의 피, 붉은 피를 흘리며 죽어간 민초의 춘사(椿事)까지 함유한 내재율을 지니고 있다. 화려함의 극치를 보이다가도 돌연 통째로 모가지가 떨어져 나가는 처연한 낙화를 보고 어찌 피맺힌 가슴의 한을 일시에 풀어낼 수 있으리오! 마냥 자괴감 같은 그 무엇이 가만히 면구의 고개를 들게 만드는 것이 바로 ‘동백나무에 서식하는 동박새’와 같은 정 시인의 내면이 보유한 시적 잠재력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