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의회 제도는 지방자치를 보조하는 기구로서, 시 집행부의 예산을 감시하고, 시민의 불편함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는 기구로서 자리 잡았다. 시의회 제도가 시행된 초반에는 자원봉사 형식으로 운영되면서 시의원에 대한 세비는 없었지만 제3대와 4대를 거치면서 세비를 받는 어엿한 정식 직업군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차츰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30년이 넘어가는 시간 속에, 시의회 제도에서 탄생한 시의회 중, 지역을 배제하고 기수로 역대급에 속하는 의회를 따져 본다면 아마 제9대(2022년 7월~2026년 6월) 의회일 것이다. 이들 9대 지역 의회에서 들려온 굵직한 내용들을 보면 ‘6개월 이상 의회 파업, 성추행, 뇌물 파동, 호화 해외 공무 여행(출장),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등’ 아주 다양하다. 특히 제9대 시의회에서 이런 일이 과거 시의회 때보다 자주 발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무엇보다 한국 정치의 전반적인 부패의 일반화와 타락의 고착화에 있다.

타락의 고착화
단체 관람이 되어 버린 시의원의 해외 공무출장
과거 시의원은 무보수 명예직이었다. 그러나 3~4대를 넘기면서 시의원들은 명실공히 세비를 받는 존재로 탈바꿈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큰 사건을 제외하고는 엽기적인 것들이 일반화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의원들의 기수가 7대와 8대 그리고 9대에 이르면서 몇 가지 정형화된 팩트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시민에 대한 충성이 아니고 당에 대한 충성을 빙자한 당협 혹은 지역위원장에 대한 충성이다. 일반 회사의 직원이 회사대표를 상대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시의원의 위원장에 대한 충성도는 상상을 불허한다. 덕분에 시의원을 위원장의 노예라고 하는 말이 나올 정도다.
시민의 눈치 안 보고 위원장 눈치만 보면 되는 현실은 안타까울 지경이다. 산수화 소속의 어느 시의원은 해외 공무출장에서 빠지면 안 되는 것이 위원장에 대한 선물이라고 할 정도다. 시의원들의 해와 단체 공무출장은 법으로 보장되어 있어서 대부분 시의원은 일 년에 한두 번 해외 출장을 단체로 다녀온다, 그래서 시의원의 해외 공무출장이 아니라 단체여행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게 되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해외 출장을 다녀온다.
지난 9대 경기 남부 지방자치 의회에서 해외 공무출장과 관련 잡음은 너무 많았다. 먼저 용인시를 보면 “이럴 수가 있을까?” 하는 정도의 난장판 해외 공무출장도 있었다. 용인시의회 의원들은 지난 2023년 회교국가인 말레이시아를 방문하며 40병 이상의 술을 가져가 현지에서 세관에 적발되기도 했다. 귀국 후 사과 성명이 있었지만, 징계는 없었다.
물론 오산시의회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023년 10월, 오산시의회에서 북유럽 연수를 다녀왔으나 호화 해외 유람이었다는 비난과 함께 이를 성토하는 장외집회까지 만들어 냈다. 이어 오산시의회 의원들과 공무원들의 음주는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으나 시민들에게 단 한마디의 사과조차 안 했다. 시민들보다 위원장에게만 잘 보이면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시민들에게 사과할 필요가 없었다는 후문이다.
다만 해외 공무 출장비 관련 부풀리기 의혹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조사 중이다. 참고로 통상 의원들의 해외 견학 비용은 1인당 440만 원이 세비로 지급되며 나머지 비용은 법적으로는 자비로 추가된다.
수원시의회 의원들은 아예 의원들의 해외 출장경비를 대납받았다는 의혹까지 있어 현재 경찰이 조사하고 있을 정도로 지방자치단체 의회 구성원의 타락은 일상화되고 있다.
시의원에게 적용 안 되는 무노동 무임금 그리고 직위 싸움
수원시가 인구 100만이 넘어 특례시가 되자 의회도 덩달아 특례시의회가 됐다. 그래서인지 특례시의회 의장직을 둘러싼 잡음은 가히 난장판 수준의 의회를 보여줬다. 수원시의회는 제9대 의회 후반기 의장을 선출하면서 약 6개월간 개점휴업을 했다. 시의원이 의장직을 둘러싸고 당적을 바꿔가며 의장에 오른 문제와 다수당이 모든 상임위원회 위원장직을 독식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타협이나 협업은 없었다. 소수당은 파업을, 다수당은 힘으로 밀어붙이기를 하며 의회를 약 6개월간 파국으로 만들었다. 그 사이에도 의원들의 세비는 지급됐다. 무노동 무임금은 서민과 노동자에게만 적용된다는 세간의 말이 확인된 사건이었다.
용인시는 수원시보다 한술 더 떴다. 수원시의회가 후반기에 의장과 상임위원장직 때문에 파업했지만, 용인시의회는 의장직을 얻기 위해 동료 의원에게 뇌물까지 전달하다 적발되는 등 차마 의원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추태를 보였다. 문제는 의원들이 세간에서는 비상식적 일을 저질렀음에도 자체 징계는 가벼웠거나 아예 없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을 공천한 국회의원 혹은 지역, 당협위원장들의 사과는 전혀 없었다.
유치원생도 안 하는 자리싸움 시의원도 해도 무방?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자체 처벌도 없음
화성시의회는 후반기에 들어서며 유치원생도 안 할법한 “너와 같은 상임위원회에서는 일하기 싫다”라는 이유로 의사일정을 무너뜨리는 엽기적인 일이 있었다. 또한 의장직도 아니고 부의장 선출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해 고성이 오가는가 하면, 같이 일하기 싫다는 의원이 또 다른 동료 의원의 사건 기록과 정보를 단체 카톡방에 노출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고소 고발이 진행됐다면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처벌될 일이었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도 하지 않을 법한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화성시의회 의원들의 자질에 대한 시비가 있었다. 그리고 이들을 공천할 때의 기준이 도덕이나 실력,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의 척도가 아니고 오직 지역 혹은 당협위원장에 대한 충성심을 공천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설이 끝없이 나돌았다.
역대급으로 많은 시비가 있었던 제9대 지방자치 의회는 이외에도 성추행 문제는 물론 자녀의 결혼식 초청장을 등기우편으로 보내는 등의 엽기적인 사건까지 있었지만 처벌 자체는 대부분 없거나 경미했다. 특히 일부 의원들의 사심 채우기 예산심의까지 처벌이 경미 했던 이유는 사건 사고가 터지면 제삼자에 의한 심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의원들끼리 사건을 논의해 처리했기 때문이다. 또한 의회에 자체적으로 윤리특별위원회가 있기는 하지만 상임위원회에서 올린 안건이 결국 본회의에서 당의 입장에 따라 사건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와 관련, 시민단체에서는 의원들이 일탈에 가까운 행위나 범죄행위 등을 저지르면 의원 신분을 회수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조례나 법안을 만드는 당사자들이 의원들이기 때문에 시민들에게는 사과조차 안 하고 오직 지역 혹은 당협위원장에게만 잘 보이면 된다는 그들만의 리그를 멈추어 세우기 어렵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