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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부터 무너진 도덕성 아래라고 온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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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적 도덕성으로 나라를 운영하자던 조선 부패로 무너져

조선 건국초기의 성리학자들은 위로부터 도덕적 모범을 보여 백성들이 본을 받아 성현의 말씀이 실천이 되는 나라를 세우고자 했다. 그래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임금으로부터 성현의 말씀을 공부해야만 했다.

 

그러나 성리학을 기본으로 하자던 조선 지배층이었던 양반의 도덕성은 조선 건국 200년이 되기도 전에 철저하게 붕괴되고, 무너지고 오직 당리당략을 위한 궤변과 신분질서 유지만을 위한 도구로서의 성리학이 강조됐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조선의 당파는 노산군(단)에게 왕위를 찬탈한 세조로부터 시작됐다. 훈구와 사림으로 나뉜 정파는 다시 선조 대에 이르러서는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다투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가 하면 왜국의 정세에 대해 파악해보라는 선조의 어명에, 일본에 다녀온 통신사들이 당파의 이익을 위해 서로 다른 말을 할 정도이었다. 결과는 비참하게도 임진왜란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위로부터의 도덕성보다 당파의 안위를 우선시하고, 파당으로 무리지은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죽이고 또 죽였다. 얼마나 죽였는지 나중에는 임금의 씨를 구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이 죽이면서까지도 당파의 이익을 앞세웠다. 당파의 이익 앞에는 그 어떤 가치관이나 도덕성도 없었다.

 

조선후기라고 할 수 있는 정조시대에 간신히 실사구시의 기반을 마련했는가 싶더니, 정조 사후 노론이 집권하고 개혁세력 모두를 제거하면서 조선의 근대화는 그 동력을 모두 상실했다. 순조 이후 조선의 지배층인 사대부에게 남은 것은 탐욕뿐이었다. 그 끝없는 탐욕은 조선이 망하는 그 순간까지도 발휘됐다. 정권연장을 위해 외세를 끌어들여 자국민을 학살하기에 이르렀지만 누구하나 반성하지 않았다.

 

조선말에 이르러 오직 정권쟁취만이 지상최대의 목표이었던 사대부들에게 성리학이 주장하는 도덕성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위로부터 무너진 도덕성이 아래를 흔적조차 남지 않도록 착취의 시스템만 남았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이 대한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백성의 노력 덕분이었다.

 

때 아닌 조선의 도덕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도덕성 논쟁 때문이다. 서민들의 꿈인 로또복권, 그 당첨금액의 수십 배의 돈들이 정치권에서 그것도 대선 후보들과 연관되어 떠돌아다니고 있다. 지금 이것이 조선말기의 그것은 아닐지라도 위로부터의 부패는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백성을 진저리치게 한다는 것을 정치권이 몰랐을까? 당파의 이익과 집권을 위해서라면 나라도 팔고, 외세를 불러 자국민도 학살했던 한말의 역사가 다시 한 번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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