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워야 할 선거,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는 축제가 되어야 할 선거가 더러운 전쟁이 됐다. 더 좋은 정책과 비전이 논의되는 자리에서는 남을 비하하는 말들이 전쟁터의 총알처럼 날아다니고, 상대방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행위가 계속해서 반복된다. 이게 최근 대한민국 대통령을 선출하는 방송에서 후보자들의 모습이다. 차마 아이들에게 함께 보자 말하기 부끄러운 모습들이다.
어쩌다 한국의 최고위직을 선출하는 선거가 이 모양이 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정책이 사라지고 누구를 탓하는 선거가 된 이번 대통령 선거는 국민이 원하는 선거는 아닐 것이다. 적어도 국민이 원하는 선거는 한국을 지탱해주는 제도와 정책을 선택하는 선거이어야 한다. 그리고 정책과 제도를 만들겠다는 사람이 대통령 후보의 자리에 나와 비전을 설명하는 것이 올바른 선거전이다.
기억하는 좋은 선거는 지난 2010년 국회의원 선거와 지난 2012년 치러진 대통령 선거였다. 2010년의 선거는 지금의 무상급식으로 알려진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와 한나라당의 선택적 복지를 놓고 치러진 선거였다. 당시 한나라당은 무상급식은 공산주의적 제도라며 반발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논리는 치열했고 모두 수긍할 만했다. 결과는 공산주의의 대표적 제도라는 무상급식의 완승이었다.
이어 치러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5세에서 7세 아동을 무상으로 교육하는 누리과정 제도를 들고나왔다. 이 또한 공산주의 제도이지만 국민은 박근혜를 선택함으로써 누리과정을 대한민국에 정착시켰다. 이후 두 제도에 대한 숱한 보정이 있었지만, 현재는 둘 다, 한국 고유의 제도로 자리잡았다.
이 모든 선택은 국민이 했다. 다만 후보자들은 “이 제도가 좋을 것 같다”라는 주장만 했을 뿐이다. 정치란 결국 국민의 선택으로 지도자와 제도가 결정되는 것임을 잘 보여준 선거다. 국민이 원한다면 그것이 민주주의가 됐던 사회주의 제도가 됐던 정치인은 이를 받들어야 하는 것이 진짜 좋은 정치이며 민주주의다.
그런데 지금의 선거는 아니다. 정책의 대결은 실종됐다. 긴급하게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인지라 준비가 부족한 탓도 있었겠지만 이를 받아치는 각각의 후보자들도 그 빌미를 제공한 과거의 흑역사가 있다. 또한 과거의 역사를 정직하게 사과하지 않고 돌려, 돌려 변명으로 일관하다 보니 결국 남 탓만 하다 끝난 선거전이 됐다.
여기에 말꼬리 잡는 식의 잘못된 토론 문화도 한몫했다. 사람이 말을 하다 보면 실수할 수 있다. 그리고 말 버릇에서 사람의 인격에서 배움의 자세를 들여다보기도 한다지만 시종일관 말꼬리만 잡고 늘어지는 선거의 양상은 국민에게 기대치보다 실망만 안겨주는 선거의 모습이었다.
국민은 말꼬리 대신 상대방 어휘의 진의를 이해하고 그 진의를 이길 수 있는 정책이나 대안을 제시해 달라고 했더니 대통령 후보들이 계속해서 비방송용 개그만 선보인 것이 이번 방송토론이었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이쯤이면 방송토론에 등장한 대통령 후보자 모두는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어떻게 움직여 발전시켜 보겠다가 아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 집권부터 하겠다는 저열한 욕심을 국민에게 들켰다면 사과를 제대로 하는 것도 정치인이 할 일이다.
지난 대선의 경선 당시 어느 대통령 후보자는 말했다. 아직도 그 말이 가슴에 남는다.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한다. 경선 과정의 모든 일들, 이제 잊어버리자. 하루아침에 잊을 수가 없다면 며칠 몇 날이 걸려서라도 잊자”라는 말이다. 이제 잊어야 할 시간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