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은 지난 1886년 미국 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무환경과 노동시간 단축을 외치며 총파업으로 시작된 노동자 투쟁의 산물이다. 그리고 지금은 전 세계 노동자들의 날이 됐다. 19세기에 노동자 총파업으로 시작된 노동절의 의미는 나라마다 조금 다르지만, 통상적으로는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기념하기 위한 날이라는 것에는 다름이 없다.
반공을 국시로 했던 우리나라는 노동절을 받아들이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서슬 퍼런 박정희 정권에서는 미국에서 시작된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불온하다고 하여 일절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대신 근면하게 일한다는 뜻을 담아 ‘근로자의 날’로 지정해 따로 사용하다가 문민정부에 들어서면서 5월 1일을 정식 노동절(may-day)로 받아들였다.

<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지금은 노동절에 사상을 입혀 색안경을 쓰고 보는 이들이 거의 없지만 몇 년 안 되는 과거에서는 노동절을 불순하게 보는 보수 정치인들이 부지기수였으며. 노동절을 언급하는 이들을 운동권으로 분류하는 정치검찰도 많았다. 한 마디로 한국 노동자들이 노동절을 그들의 날로 온전히 대접받기까지 오랜 고난의 시간이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 한국의 현실에서 노동이 대접받는 사회는 아니다. 과거에 비해 노동의 종류는 많아졌고, 노동의 대가는 고용의 형식에 따라 천차만별이 됐다. 21세기 들어 이 문제를 해결하자고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전면적으로 들고나왔지만, 현 정권을 포함해 어느 정권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특히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임에도 정치권과 사용자들은 여전히 답을 내지 않고 있다. 지금이 꿈의 21세기라는 현실 속에서도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에 한국의 노동자들을 괴롭혔던 실제가 독재 정부와 사용주라면 지금은 정부와 사용주 그리고 인공지능까지 더해진 구조가 됐다. 정치권이 노동자의 차별 문제에서 손을 놓고, 사용주는 그런 정부를 지원하는 상황에서 노동자의 목숨줄과 같은 일자리를 AI가 위협하는 세상이 됐다.
AI는 단순 기계조립에서 운수종사자까지 대체하고 있으며 심지어 서비스와 법률상담에서 기사 작성까지 하는 등 AI의 가용 범위가 갈수록 넓어지면서 인간의 일자리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일자리를 위협받는 속도가 일자리 창출보다 크게 상회하는 사회불안은 또 다른 고민이다. 거기에 더해 현 정부는 AI를 전면에 내세우며, 심지어 ‘AI 기본사회’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며 정책 기조를 내걸고 있지만 그로 인한 사회현상과 노동자 문제는 언급도 없다.
노동자 차별이라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제는 일자리 위협까지 공포로 다가오는 21세기의 오늘, 당장에 먹고사는 문제에 직면한 노동자들의 하루는 여전히 고달프다. 그럼에도 지금의 현실이 과거의 환경보다 나아지고 있다는 것, 적어도 노동자의 노동절을 적으로 간주하는 정치집단은 사라지고 있다는 것에 조금의 희망이 있다. 힘들고, 어렵지만, 조금씩이나마 노동자의 밝은 세상은 지난 20세기에 비해 전진하고 있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