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가 당성으로 가기 위한 대륙진출 교두보 '할미산성'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신라인들과 무역상들 그리고 그들의 호위를 맡았던 신라 화랑도들이 당항성(당성)을 목전에 두고 잠시 머무르며 숨을 고르던 할미산성"

용인 할미산성은 신령스러운 할머니(마고선녀)가 하룻밤 만에 성을 쌓았다는 전설이 있다고 해서 할미산성이라고 한다. 할미산성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 할미산에 위치고 있으며 신라시대에 축조된 신라계열 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마고할미 신앙은 한반도의 최북단에서부터 최남단 제주도에 이르기 까지 등장하는 우리나라의 토속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힘이 세고 거칠며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괴력을 가진 인물로 등장하는 마고할미의 전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설화에 흔적이 남아 있으며 마고할미의 어깨에는 하늘을 상징하는 날개의 흔적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마고할미의 설화는 한반도 전역은 물론 일부 설화는 바다를 건너 일본의 창세신화와 연결되고 있으며 일본의 전설 속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신화적 존재다. 그래서 마고는 한반도 사람들의 일본 전래설과 연관이 깊다.

용인 할미산성을 방문하는 길은 조금 황당하다. 지도상의 지번에는 나와 있지만 할미산성으로 가는 별도의 길이 없다. 그래서 길을 찾기 위해 고속도로를 들어갔다가 다시 마성IC를 이용해 다시 돌아 나오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할미산성을 방문하려면 우선 용인 마성 IC 고속도로 톨게이트 입구 옆에 있는 사무소에 차를 주차시키고 사무소 옆에 난 소로를 따라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할미산성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없기 때문에 무턱대고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고속도로 사무실에 근무하시는 분들은 다들 알고 있는 듯 물어보면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 할미산성의 첫 관문인 고속도로 사무소


    ▲ 할미산을 향해 뻗어있는 할미산 소로

  ▲ 석성산과 할미산의 주 능선에 서있는 할미산성 이정표

산행을 위해 들어서는 마성IC 고속도로 사무소 뒷길은 시작부터 가파르다. 길이라기보다는 산에서 내려오는 하천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길이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 옳다. 간혹 물길이 보이지만 무시할 정도이기 때문에 그냥 올라가면 되는 길이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이라면 조심해야 하는 급한 경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할미산에는 유난히 많은 상수리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지리적 특성이 잇는 것처럼 보였다.

인적이 거의 없는 산길을 15분정도 걸어 정상으로 올라가면 그때서야 이정표가 나온다. 이 정표에는 지금 서있는 길이 한남정맥의 한 등산로라는 것과 석성산과 할미산성으로 가는 방향이 표시되어 있다. 이정표를 뒤로 하고 채 5분이 되지 않아 산성의 일부가 보이기 시작한다.

할미산에서 서쪽으로 석성산 방향을 향해 할미산의 서문이 새로 복원 되어 사람을 반기고 있다. 아직 뚜렷한 명칭이 없는 관계로 ‘할미산 서문’으로 명명했다. 할미산 서문의 넓이는 2m가 조금 더 되어 보였으며, 문 위에 문루가 없는 전형적인 현도문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 현도문 형식의 할미산성 입구

할미산 서문을 제외하고는 무너진 성터의 흔적만 남았다. 서문을 지나 산의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오르는 길 내내 무너진 성벽들 사이로 성벽을 이루었던 성벽의 잔해들이 흩어져있다. 성벽을 이루었던 성돌의 양이 엄청 많은 것으로 보아 예전에는 중요한 기능이 있었던 성으로 보인다. 무너진 성벽의 성돌 들은 대체로 규암들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암석에 속하는 화강암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크기도 두께가 20cm 정도로 일정했으며 길이는 다양했다. 적어도 할미산성이 고려시대 이전에 축성되었다는 것으로 보여진다.

특이한 점은 무너진 성벽 중간 중간, 마치 군에서 참호를 만들어 놓은 것처럼 돌들이 원형의 참호를 이루고 있는 모습들이 줄지어 발견됐다는 점이다. 아마도 망루 이거나 치를 만들기 위한 기단부의 모습일 것이라고 추측됐다.


    ▲ '치' 또는 '망루'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흔적


    ▲ 성벽이 있었던 흔적

한국에서 발견되는 여타 산성과 마찬가지로 할미산성도 가파른 자연지형을 이용해 만들어진 테뫼식 산성이다. 치성으로 보이는 무너진 돌들의 흩어진 범위가 어떤 것은 10m가 넘는 것으로 보아 이 돌들을 제대로 다시 쌓는다면 상당한 높이의 성이 될 것으로 보였다. 할미산성의 정확한 축성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할미산성의 축성시기를 6세기 중반으로 보는 것은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들이 신라 계통의 것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무너진 성벽을 따라 계속 북쪽으로 올라가면 문으로 보이는 지형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아직 복원이 되지 않고 흔적만 희미하게 남아 있어 명명하기조차 어려웠다. 다만 지휘부로 보이는 지형과 가까운 곳의 문이기 때문에 ‘암문’으로 추축해 볼 수 있다. 이곳을 복원해 용인시의 지표문화재를 만들겠다는 용인시의 의지에 따라 몇 년 후 할미산성은 새로운 단장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때 가면 오산의 독산성과 함께 경기남부의 쌍벽을 이루는 산성으로 이름을 날릴 수도 있을 것으로 보였다.


   ▲ 할미산성의 서쪽 성벽

할미산성 북동쪽 꼭대기에 도달해보면 멀리 용인시의 전경이 한 눈에 보인다, 7세기 아차산성을 점령하고 다시 용인시까지 진격해 왔던 신라 화랑들이 대중 무역항인 당항성을 코앞에 두고 백제의 요새인 오산의 독산성을 지나가야 하는 살얼음판의 대치가 눈에 선하다.

중국과의 교역을 위해 당성(당항성)을 점령하고 그곳에 성까지 쌓은 마당에 오산을 돌아서 당성에 들어가야 할 만큼 대륙으로 이어지고자 했던 신라의 절박함이 느껴진다. 반대로 백제는 나제 동맹을 깨고 백제를 배신했던 신라 진흥왕에 대한 노여움이 오산 독산성을 만들었던 모양이다. 할미산성은 독산성의 코앞인 할미산에 일부러 성을 쌓아 백제를 견제해야 할 만큼 당성의 중요성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전략적 요충지에 쌓은 산성이다.

할미산성의 북동사면은 기단부에 일부 무너지지 않은 석축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처참하게 허물어져 있다. 이것들을 다시 쌓기 위해 현재 공사가 한 참 진행 중이다.

할미산성의 북동쪽 내부에는 별도의 축성 구조물들이 보인다. 적어도 2중 이상의 축성을 통해 내성과 외성을 구분하고, 소수의 병력으로 성을 지키면서 중원(충주)연락을 담당했었던 흔적처럼 보였다. 산에서 바라보는 산의 남쪽은 용인 마성 시내 전체를 한 눈에 아울러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신라시대의 산성 치고는 규모가 작은 약 651m 정도 되는 산성의 둘레를 다 돌아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30분이면 족하다.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경사면 아래의 지역은 내려가 볼 수 없었다. 다만 할미산이 신라의 한강 진출의 중요한 교두보 이었으며, 중국과의 교역을 위한 당성과의 연락과 백제의 독산성을 견제하기 위해 축성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어느 정도 가능했다.

할미산성이 새삼 중요한 산성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신라의 대중 교역로인 비단길이 재조명 받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신라인들과 무역상들 그리고 그들의 호위를 맡았던 신라 화랑도들이 당항성(당성)을 목전에 두고 잠시 머무르며 숨을 고르던 할미산성은 용인의 역사이며 우리의 역사이기도 하다.

 전경만 기자 jkmcom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