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시민프로축구단 FC안양이 2025년 마침내 1부 리그로 승격했다. 이는 안양 시민들의 자부심이자 함께 이뤄낸 성과다.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시민들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 있다. FC안양의 승격은 단순한 스포츠 성과를 넘어, 안양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순간이다. 이 기쁨을 시민들과 함께 나누며, 승격이 안양의 발전과 화합을 위한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안양시의회 의원 허원구 오늘날 사회는 종종 파란색과 붉은색이라는 이분법적 틀 안에서 해석된다. 그러나 세상은 단순히 두 가지 색만으로 정의될 수 없다. 다양한 생각과 가치가 공존하고, 서로 다른 색깔들이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이러한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인식하지 못한 채, 고정된 틀 안에서 대립과 갈등을 반복하곤 한다. 그러나 색이 섞이면 더 깊고 풍부한 새로운 색이 탄생하듯, 사회도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파란색은 진보, 붉은색은 보수를 상징하는 색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구분은 정치적·사회적 논쟁 속에서 대립과 갈등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색이 섞이면 새로운 색이
남 탓을 하며 계엄을 발동해 물의를 일으킨 윤석열에 대한 탄핵은 어쩌면 역사바로세우기의 하나일 수도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육사에서 홍범도 장군의 동상을 옮기겠다는 발표를 했었다. 광복회는 물론 많은 사람이 반대했으나 윤석열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때 알아봤어야 했다. 윤석열과 그의 추종자들이 공산주의에 대한 과대 피해망상증 환자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일제강점기에 항일한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은 물론 남의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고단한 일이었으며, 당시에는 여러 사상이 혼재했던 시기이었다. 20세기 초에 일어났던 ‘스페인 내전’을 보면, 여러 가지 사상들이 혼재하던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스페인 내전(1936~1939)이 일어나자 여러 성향의 사람들이 왕당파에 맞섰다. 그리고 민주주의 국가들과 공산주의 국가들 모두 연합군의 일원으로 내전에 참전했었다. 독재 반대를 위해 모두가 힘을 합쳤다. 시간이 흘러 민주주의가 완성된 지금, 당시 독재에 항거했던 공산주의자들을 지금의 시점으로 처벌하거나 불이익을 가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홍범도 장군(洪範圖, 1868년 ~1943)이 항일운동을 하며 활약하던 시기는
뉴스의 태반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 문제로 시끌시끌하다. 어느 방송의 뉴스를 틀어도 온통 탄핵 이야기가 도배되듯 방송에서 흘러나온다. 지난해 12월 3일 계엄령 선포와 해제 이후로 근 두 달 동안 탄핵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도배되다 보니 방송 보는 것 자체가 힘들 정도다. 법에 정통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목적이 야당에 대한 경고성이라고 하니 실소밖에 나올 것이 없다. 이 때문인지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간다. 다만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는 국민의 마음가짐은 둘로 쪼개질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대통령의 자리가 공석이 된 이유로 선거까지 치러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선거를 다시 치러야 하는 현실이 좋을 리 없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박차고 나온 정치인들의 화려한 퍼포먼스는 벌써 지원방, 모임방 등의 이름으로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원하지 않는 초대를 강요할 정도다. 가히 공해 수준이다. 어쩌면 정치를 더 혐오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하는 단체 카톡방을 보고 있노라면 어이가 없을 정도다. 원하지 않는 초대를 하고서도, 초대자는 자기가 무슨
세계 1차 대전 이후, 전쟁에 패배한 독일경제는 상당히 힘들었다. 천문학적인 전쟁배상금과 함께 영토까지 일부 빼앗긴 독일은 먹을 것조차 구하기 힘든 그런 시절을 보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아돌프 히틀러다. 히틀러는 더 이상 전쟁배상금을 내지 않겠다는 선언과 함께 배고픈 독일 국민의 증오를 유대인에게 돌렸다. 그리고 자국민의 우수성을 강조하며 자존감을 살렸지만, 그 결과는 끔찍한 학살로 이어지며, 오늘날까지도 유대인 집단학살에 대한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일본은 1923년 관동대지진 참상에 대한 화풀이를 조선인에게 돌려 대학살이 자행됐다. 이후 일본에 의한 난징 대학살 사건도 있었다. 원인은 다르지만, 참상의 배후에는 근거 없는 혐오와 배척이 자리 잡고 있다. 근대에 들러서는 세르비아에서 일어난 인종청소와 이스라엘에 의한 제노사이드가 있었다. 이런 일련의 참상을 주도한 세력은 모두 집권에 성공했던 극우파들이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최근 한국에서도 극우파에 의한 이런 시도가 종종 보고되고 있다. 사회와 정치가 혼란한 틈을 비집고 들어서고 있는 한국의 극우파는 중국인을 혐오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사실상 중국인의 한국 정치참여는 매우 어렵다.
“야당 국회의원들에게 경고하기 위해서!”, “선거관리위원회의 부정선거를 밝히기 위해서”라며 계엄을 선포하고, 포고령을 통해 국회는 물론 지방의회의 정치활동까지 중지 명령을 내리고 언론, 출판의 활동까지 중단하라 했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은 어처구니없게도 일부 의사들에게는 처단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하며 계엄 포고문을 발표했다. 다행히 국민의 도움과 국회의원들의 신속한 판단으로 계엄은 해제됐다. 만일 당시에 국민 다수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계엄령은 해제되지 못하고 실행됐을 것이다. 만일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질 뻔했다. 다시 생각해봐도 지난 12월 3일 밤은 아찔한 순간이었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계엄이 실행됐다면 서울 시내에는 총을 든 군인들이 요소요소에 배치되고, 정치활동을 막으려는 검문 검색이 일상화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군인들을 피해 달아나는 정치인들과 그들을 체포하려는 사람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며, 포고령에 따라 하루아침에 활동이 중지된 언론사들은 매일 계엄사에 의한 검열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항의하는 사람들은 계엄군에 의해 체포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그런 불상사가 국민들에 의해 와해하긴
현직 대통령을 구속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을 한국이 해냈다. 윤석열 대통령은 19일 일요일 새벽 전격 구속이 결정됐다. 이에 반발하는 극렬지지자들의 난동에 가까운 법원 습격이 있었으나 다행히도 사상자는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정치권은 난동을 부린 사람들에 대해 한쪽은 경찰의 과잉 대응이라 말하고, 또 다른 한쪽은 난동을 부린 사람들에 대해 엄하게 벌하고, 선동을 한 사람은 물론 배후자도 밝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각 정당의 입장과는 별개로 윤석열 대통령의 지도체제와 역사 인식에는 문제가 있었다.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의 공훈은 당시의 현실을 직시해 평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이념잣대로 평가함으로써 국논이 분열될 정도의 논란을 야기했다. 그리고 한국의 사법 체계를 정면 부정함으로써 반 사회주적 인물임을 스스로 드러냈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이에 야당은 연일 여당과 대통령을 향해 말의 포문을 열고 있다. 그러나 야당의 행태도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대통령의 계엄선포와 일련의 행태는 반드시 처벌해야 하고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야당이 이것을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이용해 선거 승리만을 위해 악용하는 모습처럼 보인다는 주장을 쉽게
선조 25년 4월,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정벌을 명했다. 이에 따라 왜군 20만 명이 7년에 걸쳐 한반도에 투사된다. 상비군 전력이 거의 없다시피 한 조선은 28일 만에 한성을 빼앗기고 평양성으로 후퇴한다. 한술 더 떠 선조는 의주로 도망을 친다. 이때 파업 중이었던 명나라의 ‘만력제’는 조선에 파병을 결정하고 군량미 20만 석을 보낸다. 이후 조명 연합군은 왜군을 겨우겨우 몰아내고 조선은 어렵게 나라를 구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조선군이나 명나라 군이 나라를 구했다기보다는 침략받은 조선의 백성들이 스스로 나라를 구했다고 보는 것이 옳았지만 당시 지배계층의 생각은 달랐다. 명나라의 도움으로 나라를 구했다고 생각했다. 이때 등장하는 말이 ‘재조지은(再造之恩)’이다. 한 마디로 거의 망할 뻔했으나 구해줘서 살았다는 뜻이다. 이후 명나라는 조선의 지배계층에게 재조지은의 나라가 된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임진왜란의 상처가 채 가시기도 전에 만주에 건주여진의 후금이 들어서고 조선은 후금과 명의 사이에서 갈등한다. 결국 재조지은 나라 명의 요청에 따라 조선의 장수 강홍립을 도원수로 하고, 부원수를 김경서(金景瑞)로 임명해 포수 3500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이 사법 시스템을 철저히 무시하는 것으로 혼란을 조장하더니 경기도에서는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연초부터 언론사 차별을 조장하는 기자회견을 강행하며 소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지사의 눈살 찌푸리는 언론사 차별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다. 지난해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도 어느 인터넷 언론사의 기자가 손을 꾸준히 들며 질문의 기회를 얻고자 했으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대형 언론사 기자의 질의에만 답을 주고받았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이 자리에서 어처구니 없지만, 김 지사는 영화 ‘다음 소희’를 같이 봤다고 이야기하며 자신이 소외당하는 이들의 마음을 챙기는 그런 도지사인 양 이야기했다. 그런데 정작 그 자리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가장 소외당하는 이들은 인터넷 언론 소속 기자들이었다. 질문조차 받아주지 않는 인터넷 언론 기자들의 뒷모습은 씁쓸 그 자체였다. 사실 한국에서 대부분의 인터넷 언론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몇몇 대형 인터넷 언론사를 제외하고 인터넷 언론사의 열악한 구조는 익히 아는 사실이다. 언론사 운영 이외에 별도의 수익구조가 없는 언론사의 경우 관에서 공급하는 광고에 크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 것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식의 계엄령이 지난해 12월 3일에 있었다. 농담 같은 계엄령 발동은 현실이었고 국회는 즉시 입법부의 권한을 발동해 계엄령 해제를 의결했다. 어이없는 계엄령이라고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모두가 가슴 철렁했던 순간이었다. 다행히 북한은 조용했고, 인명 손실은 없었다. 지난 과거의 한국 역사를 돌아볼 때 군 통수권자의 계엄은 모두 피를 불러온 참사가 있었기 때문인지 한국에서의 계엄은 바로 독재와 이에 저항하는 피 흘리는 시민이 연상된다. 그런 이유로 윤석열의 계엄은 지탄받아 마땅하고, 계엄 실행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한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그래서 국회는 대통령의 탄핵을 의결했고, 헌법재판소는 국회의 의결에 따른 대통령 탄핵에 대한 법적 검토에 들었다. 이와는 별개로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는 대통령의 행위가 위법한지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수사의 대상이 된 대통령이 경찰이나 공수처의 소환에 응하지 않는 파렴치한 일이 반복되면서 대통령이라는 직위가 가지고 있는 무게가 가소로워지고 있다. 법원의 영장을 받아 대통령의 신병을 인도받아 수사하겠다는 것은 법적 절차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연일 이를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그리고 을사년 새해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습니다. 2024년은 시작부터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올림픽은 신기록을 작성했으며, 대통령의 계엄과 탄핵 그리고 사고까지 기쁨과 분노 그리고 슬픔이 교차하던 한 해를 마감하며 새해를 또 기다리고 있습니다. 을사년 새해는 하시는 모든 일들이 실타래 풀어지듯 잘 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또한 꿈꾸던 것들이 소망하신 대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경인뷰는 언제나 앞서가는 언론을 다짐하며 시작했듯, 을사년에도 쉼 없이 달려가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주목받는 사람이 아닌 보통 사람의 일상을 더 많이 기록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뉴스를 보는 즐거움 경인뷰 후원계좌 농협 351-0219-6589-93 전경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