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해외파병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삼국시대에 고구려군이 신라에 쳐들어온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경상도에 파병을 한 것으로 시작해, 고려시대에 송나라 파병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광해군이 집권한 시기에 명나라에 일만 삼천여 명의 조총수들을 파병한 적이 있었다. 임진왜란을 겪었던 광해군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파병하길 거부했으나 당시 집권층이었던 양반들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가 군사를 파견해 사직을 지켜주었던 은혜를 갚아야 한다며 파병을 주장했다. 왕권이 강하지 못했던 광해군은 결국 강홍립 장군을 도원수로 삼고 파병을 결정했다. ‘사르후 전투’라고 알려진 이 전쟁에서 명나라 군은 대패하며, 망국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후금이 청으로 이름을 바꿔 불같이 일어났다. ▲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근대사에 오면 한민족의 파병은 더 멀리까지 가게 된다. 6`25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이었던 지난 1964년 9월, 의무대와 태권도 교관단이 파견된 것을 시작으로 1967년 8월까지 4차례에 걸쳐 국군이 베트남에 파견됐다. 대한민국육군 수도사단(맹호부대), 해병 2여단(청룡부대)의 전투 병력을 보내고, 뒤이어 육군 9사단(백마부대)을 파견했었다. 베트남 파병의 진실은
나라가 어렵다고 조국을 버리는 국민이 전체 국민의 얼마나 될까? 조선에서 박해와 차별을 받았다고 청나라에 붙어서 조선을 침략한 일부 조선인들, 임진왜란 당시에 살기에 팍팍하다고 왜놈과 함께 양반들을 도륙했던 일부 백성들 그리고 일본제국주의에 편승에 일제의 앞잡이가 되었던 사람들 등 역사에서 보면 어려웠던 나라를 배신한 사람들은 상당히 있었다. 그러나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전체 국민의 5% 될까? 그런 사람들이 10%만 넘어가도 나라는 이미 수백 번을 망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조국이 어려울 때 나라를 배반한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다수의 사람이 나라를 지키겠다고 나섰기에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그리고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이라는 망국기에서도 국민은 나라를 지켜냈다. 진짜 어려웠던 일제강점기에는 일반백성들이 일본에 진 빚을 갑 자고 국채보상운동을 벌였고, 1997년 IMF에는 온 국민이 금을 모아 내다 팔았다. 정말 돌이켜 생각해 보면 대단한 민족이다. 그런 사람들이 국민으로 있기에 온갖 추잡한 일이 일상이 되는 상황에서도 이 나라가 지금까지 건재한 것이다. ▲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그런데 지금은 정치권의 공방이 일반 국민이 생각하고 있는 선을 넘나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15일 공직선거법 위반 선고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민주당은 극렬하게 반발하며 사법부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고 있다. 비난의 수위 또한 작지 않다. 민주당에서는 이 대표에 대한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사법살인’이라는 말까지 하고 있다. 이는 사법 정의에 대한 굉장한 모독이다. 이재명 대표 이전에 사법부가 정치적 사안에 대한 판결을 한 최고의 사건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관련한 판결이다. 이 판결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이것도 정치공작에 의한 사법살인일까! 국민 대부분은 “아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당시 여당은 이를 묵묵히 수용했다. 물론 정치검사는 있을 수 있다. 검사로 시작해서 정치권에 입문한 사람들이 차고 넘치니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다. 대통령조차 검사 출신이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정치검사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기소한다고 해서 법관이 특정 목적을 가지고 법의 잣대를 적용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민주당의 주장대로 사법부가 특정 목적을 가지고 판결을 했다면 이는 대한민국 전체 사법 정의에 대한 진실이 흔들리는 일이다. 민주당의 주장대로 사법부의 판단이
상당히 젊었을 때, 가끔 놀러 가보았던 춘천이 불렀다. 그리고 소양강 처녀는 여전히 잘 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카메라를 챙겨 춘천으로 향했다. 그런데 춘천으로 가기 전날, 화성의 정치인들에 대한 공연한 짜증과 화가 났다. 최근 화성시는 인구가 100만이라며 특례시 진입에 대해 자화자찬하며 도심 곳곳에 이를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리고 시의 집행부와 의회는 특례시 진입에 대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화성시는 아직 특례시라고 하기에는 많은 것이 부족한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외도 아니고 국내에 있는 고작 춘천 가는 방법이 화성에는 없었기 때문에 더 찌증이 났다. 지방자치 20년이 훨씬 넘도록 화성시 정치인들은 그저 표만 얻어가고, 누릴 것은 다 누리면서 뭐 했나 싶었다. 화성에서 내 차를 이용하지 않고 춘천에 가려면 먼저 수원으로 나가거나 오산으로 가야 한다. 그 이유는 시외버스터미널이 없기 때문이다. 시의 일 년 예산이 수원보다 높고, 오산보다는 아득히 높다고 자랑하면서 화성이 잘산다는 말을 지겨워지도록 하지만 정작 시외버스터미널 하나조차 없는 도시가 화성이다. 화성시의 재정자립도가 경기도 1위라고 자랑하면서 화성시가 최고라는 정
한때 철도는 먼 곳을 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운송 수단이었다. 그 때문인지 철도는 꿈과 그리움의 대상이기도 한 적이 있었다. 철도가 꿈과 그리움을 이어주는 상징적 물상으로 나타났던 은하철도 999가 이제는 먼 옛날이야기지만 아직도 철도는 그 유용성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운송 수단이다. 우리나라의 철도는 조선 후기부터 깔리기 시작해 지금은 우리나라 전 국토에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여전히 물류의 일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이런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철도가 지나가는 인근은 소음과 단절 그리고 저개발의 상징이 됐다. 오죽하면 기찻길 옆 오막살이라는 말이 아직도 회자 될 정도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시대의 아픔과 역사를 간직한 철도가 이제 서울에서는 볼 수 없을 전망이다. 모든 철도를 지하화하겠다는 서울시의 발표에 따라 긴 시간이 요구되겠지만 철도는 지하로 사라질 전망이다. 그리고 철도부지 위로 녹색공간이 새로 마련될 것이라는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그간 철도로 인해 단절되었던 벽이 허물어지고, 살아 숨 쉬는 새로운 공간이 사람들에게 제공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철도가 도시를 나누고, 사람들 간에 거리를 두게 만드는 것은 서
한글이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한국어 한두 마디쯤은 하는 시대가 지금이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외국에 나가서 한국어로 욕하면 다 알아듣는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한국의 위상은 커지고 있다.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에 이어 소설가 한강 씨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이르기까지 작금의 한국은 어느 분야 하나 빼놓지 않고 빛이 나고 있다. 딱 한 가지 정치만 빼고 말이다. 한국의 노래와 음식, 의복 그리고 전반적인 문화에 걸쳐 한국의 것이 훌륭한 것이라는 평가가 주를 잇고 있지만 유독 정치만 삼류라는 박한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가 역사에서 기인한 것일까? 파당 정치와 세계사의 흐름에 올라타지 못했던 과거의 정치인들을 답습하는 작금의 정치에서 국민은 혐오와 환멸을 느낀다. ▲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남북으로 갈라져 반세기가 훨씬 넘도록 대립만 하는 상황에서 대통령 뽑아 놨더니 그저 대립의 구도만 더 강해지고 있다. 어떻게 하던 이 대립 구도를 깨뜨리고 평화와 안정을 모색해 보라 했더니, 대립만 더 키우고 있다. 또 남북 간의 긴장 수위만 올리는 정치를 하고 있다. 그런 정치는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할 수 있다. 남북 간에 아무것도 안 하
경상북도 성주에 사드 배치라는 날벼락이 떨어진 건 8년 전의 일이다. 박근혜 정부가 미국과의 요청 후 사드를 배치한다고 발표하자 성주군민들은 불처럼 일어나 화를 냈었다. 당시 사드 배치 상황을 설명하려고 성주에 내려갔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달걀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이어진 경찰들의 달걀 투척자 색출과 고소는 박근혜 전 정권의 모자람이 어느 정도인지를 말해주는 척도가 됐다. 국무총리라는 고위 공직자가 달걀 투척이 충분히 예상되는 장소에 갔으면 달걀 정도는 맞아주는 것이 예의다. 그러나 황 전 총리는 그러지 않았다. 경찰은 달걀 투척자들을 찾아내 폭력행위 위반이라며 군민들을 색출했다. 어이없지만 사실이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모두의 생각이 같지 않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를 하다 보면 의견이 갈려 분분한 때도 있고, 다툼이 일어나는 때도 있다. 그리고 국가 행정이 시민의 뜻과 맞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 고위 정치인이나 행정가가 현장을 방문해 설명의 시간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서 화난 시민에게 달걀 세례를 받는 것이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다. 달걀 맞기 싫었다면 아예 가지 말았어야 했다. 달걀이라도 맞아 시민들의 분
아름다운 저수지와 하천 옆에 그림 같은 야영장이 환경의 재앙일까?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싶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하천과 호수 주변에 서식지를 만들고 살아왔다. 인류의 거주 때문에 하천과 호수가 자생력을 잃어버릴 정도로 망가졌다면 아마도 지구에 있는 모든 하천과 호수들은 이미 폐기되었어야 했지만 많은 호수와 하천들은 아직 건재하다. 저수지나 하천이 망가지는 이유는 사람의 정상적인 활동 때문이 아니고 무분별한 개발 때문이다. 하천의 자연적 정화작업을 뛰어넘는 오염수의 유입으로 인해 대부분의 하천이나 저수지가 망가진다. 오염수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하천에 치명적인 것들은 공장의 폐수와 축사의 분뇨 등이다. 하천의 자연정화 능력을 상회하는 오염물질의 유입은 하천을 망가뜨리는 지름길이다. 지금 논란이 되고 되고 있는 오산천의 문제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오산천이 생태하천에서 친수하천으로 바뀐다고 해서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논리 중 하나가 오산천이 망가진다는 주장이다. 오산천이 생태하천에서 친수하천으로 바뀌면 오산천 고수부지에는 사람들의 여가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여러 시설물이 생길 수 있다. 그 시설물들이 하천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주장은
“왜 나한테 그런 질문을 해?, 가해자와 피해자 구분부터 해야지, 우리 상임위에서 나가요!. 저기 공무원 두 분, 여기 서 있는 사람들 내 보내세요” 지난 8월 26일 화성시의회 대회의장과 문화복지위원회(이하 문복위) 앞에서 나온 고성이다. 이날 오전, 화성시의회 민주당 위영란 대표는 기자들을 향해 악담을 퍼부었다. 이어 기자들을 향해 문복위에서 나가달라는 주문을 거듭 요구했고, 공무원들을 향해서도 명령조로 기자들을 내보내라 말했던 장면이다. <경인뷰 전경만 기자> 이날 기자들은 화성시의회 민주당 대표가 국민의힘 의원에게 법원 결정문을 넘겼고 그 넘긴 법원 결정문이 화성시의회 의원단체 카톡방에 전체 공개되기까지의 상황을 취재 중이었다. 그런데 공인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당 대표에게 기자들은 질문하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위 대표는 까칠한 것도 모자라 고성을 지르면서 기자들을 향해 윽박질렀다. 그 자리에는 공무원들도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공무원을 마치 자기 집 경비원 부리듯, 기자들을 상임위에 못들어오게 하라며 기자들을 방에서 내보내라고 소리 질렀다. 이 정도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갑질의 수준을 한참 벗어나 아예 제왕의 수준이다. 위 대표에게 사과
최근 일본과의 관계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몇몇 한국의 주요 인사들의 고민은 일본의 내부 사정에 의한 우려가 아닌 한국 내부 사정에 의한 우려라는 점에서 고민과 갈등이 커지고 있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이런 우려는 없었지만, 윤 정권이 3년 차를 맞이하며 새로 관료로 임명되는 인물들의 면면히 친일파 혹은 매국노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특히 일부 인사는 친일을 넘어 아예 일본의 주장을 대변하는 듯한 자세를 보이면서 윤 정권에 대한 불신과 실망 그리고 저항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8월 독립기념관장에 새로 선출된 인물에서부터 그 주변에 이르는 인물들까지, 우파라고 보기에도 민망한 악성 우파들이 세금을 잡아먹는 자리를 차지하며 국민의 반감까지 사고 있는 형국이다. 악성 우파들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들의 주장 면면을 들여다보면 대체로 “대한민국은 1945년 건국,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그리고 일제 강점기 부정” 등이다. 어처구니없지만 그들은 대한민국의 세금 일부를 급여로 받아 가는 사람들이 많다. 8월 15일을 광복절이 아닌 건국절이라 주장하는 그들의 말 대
어쩌다가 철 지난 건국절 논쟁이 다시 불이 붙었는지 이유는 명확하다. 국가의 일부 고위직 인사들이 요직에 앉으면서 일본의 주장과 선이 닿아 있는 듯한 그들만의 주장을 되풀이하며 식민사관을 국민들에게 강요 안 하는 척하며 강요하기 때문이다. ‘건국’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나라를 세우는 것이 건국이다. 지금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일부 보수층의 주장대로 라면 1948년 이전에 없던 나라를 이승만이라는 사람이 나라를 세운 것이 된다. 그들의 주장대로 하면 1948년 8월 15일 그 이전에는 대한이라는 말을 쓰는 나라가 한반도에 없던 것이 된다. 그러하다면 1948년 이전에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며 죽어간 수많은 독립열사들의 나라는 어디에 존재했었던 나라일까? 유관순 열사가 목놓아 불렀던 대한독립 만세의 나라는 어디에 있으며,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은 어떤 나라의 독립을 위한 저격이었을까? 독립운동은 주권을 상실한 나라의 국민이 나라를 되찾자고 한 것이다. 그런데 대한의 건국일을 1948년으로 하면 그 이전,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웠던 그 수많은 독립의 역사를 지우게 된다. 일본이 가장 원하는 그림이다. 그것에 동조하는 자를 요즘 말로 하면 뉴라이트라고 하던
“전임 정부에서 하던 일이라 잘 모른다, 전임 정부의 잘못이다, 전임 정부의 행정 오류다.”라는 말들이 난무하는 것이 최근 정치권의 일상이다. 정부의 잘못을 따져 묻는데 회피 혹은 면피용으로 하는 말일 수도 있고, 혹은 전임 정부를 공격하고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의 주가를 올리려는 얄팍한 의도의 말일 수도 있다. 여기에만 그치지 않고 도를 넘어서 전임 정부의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잘못됐다며 반대의 방향으로만 가고자 하는 정치인들도 최근에는 비일비재하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를 막론하고 현 집권 정부도 전임 정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것처럼, 마치 자신은 언제나 젊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처럼 행정의 연속성을 부정하는 모습은 뭔가 잘못돼도 많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집권 우두머리가 바뀌어도 행정의 일관성과 연속성이 유지될 때 국민의 삶은 편안하고 안녕한 것이 사실이며 현실이다. 집권 우두머리 몇몇이 바뀌었다고 과거의 행정이 모두 부정당한다면 부정당한 그것과 연관된 다수 공무원의 노력과 열정의 값은 무엇이란 말인가!. 연산군 시절처럼 세조를 부정했다고 하여 사화라도 일으킬 심산은 아닐진대, 집권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