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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산성> 서라벌 화랑 당성에 도착하다

대륙을 원했던 신라인들의 기상을 보여주는 역사적 장소
당성, 화성시의 랜드마크로 급부상


화랑 낭도들은 나열했다. 서라벌에서 벗어나 아주 멀리 중국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첫 출정에 앞서 자신과 동료들의 준비물을 점검하고 언제 적과 조우할 지도 모른다는 일전의 각오를 다짐하면서 그들은 출발했다. 진흥왕을 따라 중원(충주)을 넘을 때 멀리 보이는 아차산성을 뒤로 하고 안성에 이르렀다. 중원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요새 죽주산성에서 여장을 푼 화랑도들은 최후의 전투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죽주산성에서 할미산성 그리고 바로 그 앞에 백제의 전사들이 기다리고 있다. 왕의 명령은 단호했다. “더 이상 백제와의 동맹은 없다. 고구려의 위협은 물러나고 우리가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 당성(사적 217호)은 반드시 정복해야만 한다. 이곳을 점령하지 못하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


   ▲ 당성으로 들어가는 입구

고구려의 남진을 함께 막아보자던 나제동맹은 깨어지고 화랑도들은 파죽지세의 기세로 당성을 향해 진격했다. 신라의 기습적인 침탈로 당성은 화염에 휩싸였다. 한때는 백제의 요새 이었으나 고구려 장수왕에게 빼앗기고 다시 찾기까지 20년이 걸렸던 백제의 요새 당성은 동맹군이라 믿었던 신라의 배신으로 신라에게 넘어갔다. 서라벌에서 출발한 신라의 화랑들은 불타오르는 망해루(望海褸) 앞에서 포구를 바라보며 서로를 얼싸 않았다. 천년왕국으로 가려는 신라의 염원을 이루어 낸 것이다. 당성은 고도가 낮은 서해안의 요충지이었으며 절벽위에 만들어진 작은 요새다. 당성 일대는 높은 산이 없어 산성을 만든다고 해도 구봉산만한 산이 주변에 또 없는 천혜의 지형이다. 성벽 밑으로는 자연스럽게 절벽이 형성되어 있으며 포구들을 한눈에 조망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이곳에 병영이 생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백제와 고구려 군사들은 당성에 군대를 주둔시키며 요새를 지킬 생각만 했는지 포구를 지키는 당성은 아주 작았다. 백제인들이 만든 당성의 둘레는 680여 미터밖에 되지 않는 전형적인 테뫼식(산 정상부에 테두리 모양으로 쌓은 산성) 산성이다. 그러나 신라인들은 생각이 달랐다. 당성을 시발점으로 중국과 교역을 하고 화랑들을 따라 북상한 상인들의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서는 당성을 확장해야 했다. 신라의 군인들은 서둘러 당성을 확장했다. 기존의 성에서 북쪽으로(육일리 방향) 성을 더 확장하고 군인들을 증강 배치했다. 테뫼식 산성이었던 당성이 포곡식(계곡을 끼고 있는 산성) 산성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당성이 포곡식 산성으로 바뀌면서 성벽의 둘레는 두 배로 늘어나 약 1.2km가 됐다. 안에 많은 건물들도 들어섰다. 삼국통일을 위한 신라의 용트림은 그렇게 당성으로부터 시작됐다. 신라가 당성을 점령한 후 100년이 되기도 전인 서기 660년 백제는 나당 연합국에게 패망 한다.

과거의 격전지이자 통일신라의 기틀이 되었던 당성은 오늘날 많이 훼손되어진 채로 남아 있다. 당성이 소재해 있는 화성시는 채인석 시장이 취임하면서 복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당성은 통일신라의 유적지이자 한반도와 아시아를 잇는 실크로드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많은 방문객들이 찾아가고 있으나 당성입구라는 팻말조차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 당성 동문지와 바로 옆으로 이어지는 성벽


   ▲ 당성의 서남쪽 성벽과 성벽에서 보이는 해안가와 축성에 사용된 성돌

새로 만들어진 당성입구에 주차를 하고 당성 동문지까지 걸어가는 시간은 10분 정도면 된다. 당성 동문지에 앞서 서있는 당성비와 안내간판은 현재 당성이 복원중임을 말해주고 있다. 당성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어 동문지의 형태만 남아 있을 뿐 동문의 형태가 홍예문인지 아니면 현도문인지 알 수가 없다. 다만 비슷한 시기에 축성된 성들의 모양으로 추측해보면 견훤산성(경북 상주)의 동문과 비슷한 형태의 현도문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다.

동문지에서 현재 복원 중인 서문쪽으로 가기위해 성벽을 따라 가는 길은 상당히 가파르다. 동문지 바로 뒤에 당성 우물지가 있는 것으로 보아 당성의 중심은 동문과 우물지를 중심으로 원형의 팔을 펼치는 형식의 성곽이다. 동문지에서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가면 바로 서해안의 포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힘들게 올라와 바라보는 서해안의 포구들은 왠지 모를 감성을 일깨우는 힘을 가졌다.

성벽들의 높이는 2m~3m 이다. 복원에 사용되고 있는 성돌 들은 지나치게 크다는 생각이 든다. 돌을 잘 다루었던 삼국시대 백제인들은 성곽공사를 하면서 돌을 편편하게 잘라서 성곽을 쌓아갔다. 비교적 큰 돌을 옥수수 모양으로 쌓아가는 방식은 고구려 성곽방식이다. 그런데 당성 복원에 사용되고 있는 성돌 들의 크기는 조선시대의 양식으로 보일 만큼 큰 돌들이 사용되고 있다. 복원도 좋지만 고증의 방식에도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다.

동문 성곽길을 따라 서남방향으로 걷다보면 무너진 구간이 보인다, 아마도 포구로 직접 내려가기 위한 암문이거나 서문일 확률이 높다. 너무 허물어져 문의 형태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당성의 동남구간이 백제인들이 만든 일차성이라면 서해 포구로 가지 위한 ‘암문지’일 확률이 높다.


   ▲ 당성에서 제일 곳에 위치하고 있는 서쪽 성벽, 바로 이 옆에 '망해루지'가 있다.
 
서쪽 성벽의 아래는 상당히 가파르다. 일종의 해자라고 볼 수 있는 해안 쪽에서 누군가 공격해 온다면 소수의 병력으로도 충분히 방어가 가능한 높이와 경시를 가지고 있는 구간이 당성의 동남 구간이다. 성벽의 높이는 서쪽으로 갈수록 더 높아진다. 서해안을 직접 대면하고 있는 서쪽 성벽구간은 당성의 가장 핵심부에 해당된다. 성벽의 높이도 4m 가까우며 당성에서 가장 높은 곳인 구봉산 정상이 바로 서쪽에 있다. 구봉상 정상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망해루지가 있다. 망해루는 고려말 남양부사 정을경이 이곳에 망해루를 세우고 손님을 맞았다고 한다. 그러나 망해루가 위치한 곳은 구봉산 정상이기도 하지만 당성의 기단이 존재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망해루가 세워지기 이전에 이곳에 당성의 지휘부가 있었을 확률이 높다.


   ▲ 망해루지와 서쪽 성벽이 끝나는 부분


   ▲ 당성 북쪽 성벽과 동쪽 성벽으로 이어지는 부분에 있는 소나무

망해루를 기점으로 육일리 방향으로 신라인들이 새로 만든 2차 성벽이 이어진다. 아직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흔적만 남아 있는 서북쪽 방향의 성벽길은 한국인들의 정서를 담은 옛길처럼 정겹게 느껴지는 구간이다. 그러나 성벽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되는 아래쪽은 절벽처럼 가파른 구간이기 때문에 성벽을 쌓기에 딱 알맞은 지형이다. 북쪽 성벽은 어느 정도 복원이 이루어져 있으나 북문 구간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고 문지만 남아 있다. 문지의 형태로만 보면 오산 독산성 서문(현도문)과 비슷한 형태의 문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동문에서 북문으로 꺾이는 부분에는 또 다른 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문과 연결된 길을 따라 가면 당성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는 우물지에 연결된다. 그래서 북쪽 성벽과 동쪽 성벽이 만나는 지점에 만들어진 문은 아마도 내륙과의 연결통로 또는 상인들이 출입하던 중요한 문 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동쪽 성벽은 상당히 견고한 형태의 직선을 유지하면서 동문지로 이어지고 있다. 동문지에 다다르기 전에 성벽 전체가 사라진 것으로 보아 성벽과 함께 큰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당성 우물지와 안내 표지

동쪽 성벽 안쪽에는 우물지가 있으며 우물지를 중심으로 평판한 지형들이 계단형식으로 존재하는 것을 보면 많은 병사들과 사람들이 우물지 주변에 건물을 세우고 생활 했을 것으로 상상해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당성은 ‘치(성벽 돌출부)’와 횡시(안으로 구부러진 모양)가 없는 형태로 만들어진 성이다. 절벽위에 건설되어졌다는 것은 일반성과 다를 바를바 없으며 측성같은 구조물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당성이 독자생존을 강요당한 성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신라의 화랑들이 서라벌에서 출발해 천리길을 넘어 당도한 당성은 서해를 지키는 요새이자 실크로드의 시작점이다. 그리고 신라의 대중국 외교무대의 관문이기 때문에 큰 역사적 의미가 있는 산성이다. 당성에서 서해 방면의 포구를 바라보고 있으면 신라인들의 뱃놀이가 절로 눈에 선하다.

전경만 기자 jkmco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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