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경기도의 산성> 불패의 전사들이 살았던 독산성

돌아오지 않는 화살이 되어....,
귀실복신 “당나라에게 대백제의 위대함을”


<오산 독산성 탐방 제1편>

독산성의 백제 전사들은 머리띠를 질끈 묶었다. 그리고 허리에 두 개의 칼을 꼽고 출병준비를 마쳤다. 백제 전사들의 눈에서는 원한의 안광이 흘러나왔다. 사비성이 함락되고 왕(의자왕)이 당나라 군대에 의해 당나라로 끌려갔다는 소식에 식음을 전폐한지 오래전이다. 당성에 상륙한 당나라군은 독산성을 우회해 사비성으로 바로 진격했다. 독산성에 주둔해 있던 백제의 군사들은 손쓸 틈도 없이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하늘에서 비가 끊임없이 쏟아지던 날 ‘귀실복신((鬼室福信, ? ~ 663년)은 소리 소문 없이 출병의 깃발을 올렸다.


   ▲ 산 아래에서 보이는 독산성

"백제의 백성들이 당나라의 말발굽 아래에서 울고 있다, 대백제의 전사들은 다시는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각오로 웅진도독부를 함락시킬 것이다. 출병!”

그렇게 독산성의 문은 열렸다. 하늘의 요새이자 단 한 번도 적군의 침략을 허락하지 않았던 독산성의 성문이 열리고 백재의 전사들은 다시는 살아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출병했다. 독산성 천수기단 위에 자리 잡은 지휘부의 건물위에서는 삼족오들이 줄을 이어 출병하는 백제의 전사들을 배웅했다.

서기660년 백제는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했지만 백제의 경기도 주력군은 전략적 손실이 없었다. 경기도 주력군은 백제 왕실의 일원인 귀실복신과 함께 남하해 백제부흥운동을 펼친다. 이에 일본의 마고천왕은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의 요청으로 군사 27000명을 백제로 급파했다. 그러나 백제와 일본 연합군은 전력을 재정비한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게 금강하구에서 대패(백천강 전투)하고 만다. 이때 왜(규슈)로 돌아간 일본군과 백제는 나당 연합군의 공격을 대비해 불패의 성 ‘오산 독산성’을 일본 땅 규슈에 다시 만들게 된다. 이때가 서기 663년의 일이다.

독산성(사적 140호)은 오산 지곳동에 위치한 백제의 산성이다. 테뫼식 산성으로 산정상부에 테두리 모양으로 성을 쌓았다. 독산성의 형태는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직사각형 산성이다. 백제시대 만들어진 산성이며 시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다시피 했으나 비교적 원형이 많이 남아 있는 산성이다.

독산성이 원형의 모습을 많이 간직한 이유는 조선후기에까지 군사가 주둔했을 만큼 전략적 요충지로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독산성 정상에서는 수원과 오산, 화성에서의 움직임이 일목요연하게 잡힌다. 단 한군데도 막힘없이 사방을 두루 살필 수 있고 깎아지른 절벽위에 성이 있기 때문에 점령은 감히 꿈조차 꿀 수 없는 천혜의 요새가 바로 독산성이다.


   ▲ 독산성의 동문, 정면 모습(사진 좌측) 후면 모습(사진 우측)

동문은 독산성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문이다. 현도문 형식으로 되어 있는 동문은 백제산성과 일본 산성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ㄱ’자 구조의 출입문을 가지고 있다. 일명 ‘마스가타’‘구조라고 하는 형식의 ‘ㄱ’자 구조의 출입문은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으나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낮선 출입자에게는 공포감을 자아내게 한다. 또 다른 ‘ㄱ’구조의 출입문의 장점 중 하나는 성을 방어하기 좋다는 점이다. 성문을 통과하는 적은 삼면으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적을 ‘참살’하기 용이한 구조다. 오늘날 일본에 남아 있는 성곽이나 산성은 모두 이런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또 우리나라 남해안 일대에 남아 있는 왜성의 성문 구조는 모두 독산성과 비슷한 형태의 ‘마스가타’ 구조를 갖추고 있다.


   ▲ '동북1치'와 멀리 보이는 동탄신도시

동문을 통과해 성벽위에 올라서면 멀리 동탄 신도시가 한 눈에 들어온다. 독산성 주변에는 바로 앞의 양산을 제외하고는 높은 산이 없어 상당히 멀리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성벽 길을 따라 북쪽으로 조금 가면 바로 ‘동북1치.(치: 성벽에서 튀어 나와 적군을 살필 수 있게 만든 성과 구조)’가 보인다. 아직 정식명칭이 없어 임의로 ‘동북1치’라고 부른다. ‘동북1치’는 동문을 보호하기 위한 구조물에 가깝다. 동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동북1치 앞을 지나야 한다. 절벽위에 튀어나온 동북1치에서 적군을 공격한다면 공격받는 적군은 숨을 곳이 없다.


   ▲ 수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북동치'와 북동치에서 보이는 북쪽 성벽

북쪽으로 조금 더 가면 독산성의 조망권이 왜 경기도 넘버원인가를 보여주는  ‘북동치’가 보인다. ‘북동치’는 자연석을 이용해 그 위에 돌을 얹어 ‘치’를 만들었다.  '치'  아래로는 어지러울 정도로 깊은 절벽이 있다. ‘북동치’에서 바라보는 수원은 고요의 바다를 그리고 있다. 수많은 점들이 비상활주로위를 빠르게 달리고 있다. 수원에서 군사를 일으켜 움직임이 있었다면 이곳에서 움직임을 감지하고 충분한 준비가 가능한 거리와 위치다. 훗날 임진왜란 당시 독산성으로 후퇴한 권율의 군대가 왜군의 공격을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은 독산성이 가지고 있는 전투력이 그 어떤 성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다.


   ▲ 북문과 북문에서 바라본 북동치

북동치에서 직각으로 꺾여 북문으로 이어진 성벽길은 성벽 전체가 안쪽으로 활처럼 휘어져 있다. 이런 구조를 ‘횡시’라고 하는데 일직선상의 성벽을 안쪽으로 휘어지게 만들어 놓으면 성을 공격해오는 적들을 방어하기에 상당히 유리하다. 방어하는 군대는 공격해오는 적군의 삼면을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성곽에서는 ‘횡시’를 기본 성곽구조로 삼고 있다.

북쪽 성벽의 중간쯤에는 북문이 있다. 구조상 성의 정문으로 볼 수 없는 작은 문으로 암문에 가깝다. 독산성에서 북문의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왜성의 구조를 보면 성의 지휘부가 있는 천수기단(세마대)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높은 곳에 문을 하나 두고 또 다른 하나의 비상문은 물과 접한 곳에 두고 있다.

독산성 동문이 첩자와 기습을 위한 문이라면 독산성 북문은 독산성의 내성과 직접 연결된 통신과 피신을 위한 문이다. 왜냐하면 북서쪽 성벽 아래에는 황구지천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황구지천을 ‘해자(물을 이용한 방어시설)로 본다면 독산성의 성곽구조는 오늘날 일본이 자랑하는 모든 성곽의 어머니가 된다. 천수기단과 해자 마스가타, 횡시는 일본 성곽을 설명하는 중요 단서들이다. 독산성은 이런 모든 단어에 적합한 기본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독산성을 닮은 일본의 석축 산성은 8세기 이후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쪽 성벽의 특징은 통상의 산성들이 가파른 절벽위에 만들어진 성곽 이라는 점과 비슷하나 치가 없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 구간이 짧은 이유도 있으나 ‘북동치’와 ‘서북치’ 사이에 ‘횡시’구조 하나와 ‘해자’만으로도 적을 충분히 방어할 수 있기 때문에 별도의 ‘치’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성곽에서도 해자가 있는 구간에는 별도의 치를 잘 만들지 않는다.


   ▲ 서북치와 서북치에서 바라 본 서문, 서문 아래의 절벽은 매우 가파르다.

다시 성벽길을 따라 걸으면 곧 ‘서북치’를 만날 수 있다. ‘서북치’는 서쪽 성벽과 북쪽 성벽을 직각으로 나누는 구조물이자 밖으로 3m 이상 튀어나와 있기 때문에 북쪽과 서쪽의 서문을 모두 방어하는 중요한 방어시설이다. ‘서북치’에서는 화성 정남과 황구지천이 한 눈에 들어온다. 황구지천은 현재 정비가 잘되어 있는 하천이다. 하천의 폭이 넓어 ’해자‘역할을 충분히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황구지천의 폭은 순천왜성이 가지고 있는 ’해자‘의 폭과 비슷하다.

또한 ‘서북치’에서는 서문은 물론 서쪽에서 남쪽으로 성벽이 직각으로 꺾이는 서남 1치가 훤히 보인다. 서쪽에서 적군이 접근해 온다면 ‘서북치’에 서있던 감시자의 눈길을 피해가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 독산성의 서문, 현도문 양식으로 안쪽에서 바라보는 서문(사진 좌측)과 바깥쪽에서 바라 본 서문

서북치에서 경사진 길을 따라 내려가면 바로 서문이 보인다. 서문은 전형적인 현도문이다. 동문과는 다른 방어시설을 갖추고 있었던 서문은 성문 안쪽에 성문의 넓이보다 긴 두터운 벽을 만들어 성문 안쪽을 들여다 볼 수 없도록 했으며 둔턱 모양의 양옆으로 사람들을 통행하게 했다. 그리고 현도문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감시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낭떠러지 위에 서있는 서문을 통한 공격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성곽구조는 고구려 성곽의 기초 방어시설에 해당한다.


  ▲독산성의 서쪽 성벽과 남쪽 성벽의 경계선에 서있는 '서남치', 이 지점을 기점으로 성격은 직갂으로 꺾여 남쪽으로 이어진다.

서문의 남쪽에 가깝게 위치한 ‘서남치’는 성벽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며 매우 아름다운 각도를 그리고 있다.

제2편을 기대해 주세요................,


포토

더보기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