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이슬람 문화에 대한 한국인들의 편견과 오해

이슬람은 동양에서 시작된 종교
한국인의 특성화 비슷한 부분이 많아 한류가 쉽게 전파된 지역


북아프리카에서부터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면적에 자리 잡은 나라들을 이슬람 국가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알라신을 믿고 예언자 무함마드를 따르고 있는 사람들이다. 무려 57개국에 걸쳐 18억 이상의 사람들이 무슬림이다.

이들은 최근 각종 내전에 시달리면서 내우외환을 겪고 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난 국가의 사람들은 내전을 피해 유럽과 아시아 등 전 세계로 이주하고 있다. 실로 600년 만의 대이동이다.



과거에는, 약 600년 전에는 많은 유럽인들과 아시아인들이 스스로를 무슬림이라 부르면 개종하기 바빴는데 이제는 역전이 된 셈이다.

포용력이 다른 어떤 종교보다 강했던 이슬람이 내전에 휩싸이면서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나라들은 이들의 잔혹성을 실시간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왜 싸우게 됐는지 그리고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는 잘 보도하지 않는다. 또 서방세계가 어떻게 그들을 살인하고 핍박하고 있는지도 보도하지 않는다.

지난 1915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유대인들은 지금의 팔레인스타인 지방에 모여든다. 유대인들은 제1차 세계대전당시 영국을 도와 전쟁에 참가했다(로스차일드 밀약). 그리고 팔레인스타인 땅에 자신들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는 약속을 받아 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그들은 팔레스타인 땅에 도착했다.

당시 팔레스타인땅에 거주하던 무슬림들은 자신들의 나라로 몰려오는 유대인들을 난민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이 새로운 땅에 거주할 수 있도록 물과 식량을 내어준다. 무슬림들은 무함마드가 가르친 율법 그대로 핍박받는 사람들을 도와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힘이 생기자 거꾸로 무슬림들을 학살했다. 그것이 지금의 팔레스타인의 비극이다.

유대인들의 자본주의는 오랜 전통적인 것이다. 유대인들이 만든 동인도회사는 본격적인 자본주의의 시작이다. 이 자본주의는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으로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만들었다.

유대인의 상술은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서도 잘 보여준다. 자본주의의 시조격인 유대인들을 비난하는 희곡 ‘베니스의 상인’은 유대인들의 고리대금업을 조롱하고 있다. 그러나 무슬림은 코란에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을 철저하게 금하고 있다. 그 전통은 오늘날에까지 전해져 이슬람국가의 은행들은 지금도 이자를 받지 않고 있다.

이들 무슬림들의 이런 규칙은 많은 사람들이 무슬림을 믿는 원동력이 됐다. 610년 바그다드의 메카에서 시작된 무슬림이 북아프리카에서 중앙아시 및 동아시아 일부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영토에 세력을 확장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슬림제국이 아주 적은 세금만 걷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7세기 중반, 동로마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가 전쟁을 벌이면서 두 나라는 시민들에게 가혹할 정도의 세금을 징수 했었다. 가혹한 세금징수를 견디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무슬림으로 개종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차 세력을 확장한 무슬림은 드디어 15세기에 이르러 로마인을 자처한 유럽인들의 마지막 희망이었다는 동록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1453년)을 함락 시킨다.

결코 무너지지 않았을 것 같았던 비잔틴의 정수이자 그리스정교의 중심지 콘스탄티노플이 무너지자 더 많은 사람들이 개종을 하기 원했으나 무슬림은 이교도의 개종을 금지시켰다. 대신 이교도들에게 공납을 받았다. 이 공납은 개인이 내는 세금보다 약간 높았을 뿐이다. 덕분에 무슬림 아래 유대인들은 공납을 내면서 유대교를 유지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정교도인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무슬림이 관용적이라는 것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오스만투르크의 메흐메트2세의 행동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메흐메트 2세는 콘스탄티노플 안에 있었던 세계문화유산인 소피아 성당을 파괴하지 않았다. 그가 소피아 성당 내의 신상을 파괴하지 않고 그냥 천으로 덮어두고 알라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일화는 유명하다. 종교가 다른 문화가 만든 것이라 할지라도 훌륭하다고 하면 파괴보다는 보존을 택하는 것이 그들의 방식이었다. 그들의 그런 방식 덕분에 오늘 이스탄불로 불리는 콘스탄티노플의 많은 유물들이 보존될 수 있었다.

반면 이슬람이 철수한 그라나다 지방에서는 카돌릭 군대를 자처한 에스파냐의 군인들에 의해 알함브리궁전(1492년)이 무너져 내렸다, 이 역사적인 사건은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많은 파괴와 피를 뿌렸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당시 알함브라의 왕은 백성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스스로 항복했다. 그러나 에스파냐의 군대는 무슬림에 대한 학살을 멈추지 않았다. 코란에서는 적이라고 해도 항복한 적에게 학살을 자행한 역사가 없다. 그래서 콘스탄티노플 함락전쟁 후 항복한 여러 종교인들은 무슬림 대신 그들의 종교를 믿으면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이슬람의 일부다처제를 조롱하는 듯한 글이 많다. 그러나 이것은 조롱의 대상일 수 없다. 과거 이슬람은 수많은 전쟁이 있었다. 부족 간의 전쟁에서부터 영토 확장 전쟁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전쟁을 수행한 남자들은 대부분 죽거나 부상을 당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사상자의 가족들을 돌봐 주기 위한 제도로서 일부다처제가 만들어졌다.

코란을 만든 무함마드는 세계최초의 페미니스트 이었다. 무슬림 이전에 여자는 재산으로 취급됐다. 사고팔 수 있었으며 노예와 비슷한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무함마드는 여자에 대한 인신매매를 금지시키고 결코 사거나 팔 수 없도록 지시 했다. 그는 죽기 직전에 “세상에서 제일 귀중한 존재는 어머니”라고 말하며 미래의 어머니들을 결코 사거나 팔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나 사악한 존재들은 있다. 무슬림의 법을 악용하는 일부 북아프리카 무슬림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무슬림은 대단히 관용적이고 실용적인 종교다. 이자보다는 이윤을 함께 나누는 종교이며, 우리 안에 내가 있고 내가 있으므로 해서 우리가 있다는 그들의 말처럼 공동체를 중시하는 그들의 경제 시스템은 자본주의적 시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이슬람에는 삼분법이라는 것이 있다. 무슬림들은 자본주의를 인정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 무슬림자본가들은 죽으면서 유산을 반드시 삼분해야 한다. 삼분의 일은 국가에 헌납해야 하고, 삼분의 일은 사회에 귀속해야 하며, 나머지 삼분의 일은 가족에게 유산으로 상속할 수 있다. 이 법은 지금도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으며 오늘날의 이슬람을 이끌어가는 경제체제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슬람의 경제는 자본주의와 막스의 중간에 위치한 체제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만든 자본주의 사회는 끊임없이 이슬람의 사회경제체제를 미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의 이슬람 경제체제는 미국의 무차별 폭격에도 무너지지 않았으며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의 공작에도 여전히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공동체 정신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 한류는 좀 특별한 것이다. 무슬림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가 권선징악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류 드라마의 대부분이 권선징악적인 면이 많다고 한다.

처음 말레이시아와 파키스탄에서 시작된 한류가 불과 수년 만에 아랍에미리트를 거쳐 북아프리카의 부국 알제리까지 급속도로 번진 것은 한류 속에 들어 있는 우리라는 공동체적인 삶과 연관이 깊다. 특히 권선징악을 기본바탕으로 깔고 있는 한국의 드라마는 미국이나 유럽의 그 어떤 드라마보다 무슬림들에게 환영을 받고 있다.

다음 편
“한 손에는 칼 그리고 또 다른 한 손에는 코란”에 대한 진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참고로 필자는 무슬림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