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자벌레 / 김경옥

김경옥(1954~)

부산 출생

경상대 대학원 심리학과

2010년 중앙일보 시조백일장 장원

2011년 한국시조시인협회 백일장 장원

2015년 시조전문 잡지 ‘유심’ 등단

한국문인협회, 수원문인협회

 

 

삼천 번 절을 해야 만나 뵙던 노스님

‘좋은 줄 알면 절 문턱이 다 닳을 텐데’

 

홀리듯 남기신 말씀

새겨듣던 인연으로

 

북쪽에 티벳 사람들 성지순례 가는 길

두 손에 나막신 끼우고 온몸을 던지듯이

 

좍 펴고 또 일어서고

육필 경전 사경 한다

 

어쩌면 접었다 폈다 어눌한 그 행보는

스쳐간 숱한 인연을 공손히 받드는 일

 

푸르게 써 내려가는

삼보일배 또 일 배.

 

시읽기/ 윤형돈

 

김경옥 시조시인의 시편을 몇 수 읽노라면 다소곳 불심을 받아들여 깊이를 더하고 빛깔을 다채롭게 하는 속내를 엿볼 수 있다. 未生의 신발 끝에 이름 모를 ‘점등’이 그렇고 다양한 은유와 환유의 세계가 시종 형이상학적 심오함의 세계로 톺아간다고나 할까. 여기서 ‘자벌레’는 경전을 공부하며 날마다 묵언 수행하는 수도자의 모습이다. 미물을 대하는 시인의 감성과 이미지가 의식과 언어로 감히 포용할 수 없는 부처의 세계를 전한다.

 

하찮은 생명체에 관심을 가지고 손을 흔들어 주는 표현법이 알 듯 모를 듯 시의적절한 질문을 던지며 궁극적 진리로 다가오는 까닭이다. 그것은 구름 누에가 만월을 야금야금 갉아먹듯 시상의 전개가 연기적 사유(緣起的 思惟)와 깨달음의 경지를 넘어 생태론적 패러다임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내심 시인 자신만의 불교적인 시적 질감이 존재하고 거기에 작동하는 언어가 순례자의 경건한 행보와 같다.

 

자나방의 애벌레인 ‘자벌레’의 움직임은 ‘좍 펴고 또 일어서고’ ‘접었다 폈다’하는 움직임이 고작인데, 시인의 눈에는 그것이 불자가 삼보 일 배하는 수행 과정으로 비친다. 자벌레는 유충상태에서 꿈틀꿈틀 몸을 움츠렸다 폈다를 반복하면서 어디론가 무목적의 여행을 지속하는 것이 끝없는 인생여정과 흡사하다. 잔가지처럼 생겨 자신을 은폐하는 은둔자의 외톨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먹물로 생의 화선지에 육필을 쓰듯, 뼘을 재듯 꼬리를 가슴 가까이 붙였다 떼었다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성지를 순례하는 순례자의 모습이다.

 

자로 잰 듯 꾸역꾸역 또는 슬금슬금 돌아가는 연둣빛 벌레의 반복적인 수고와 단순한 동작이 시인에게 그 어떤 화엄의 진리를 깨우쳐 주었을까? ‘사경하다’는 후세에 전하거나 공덕을 쌓기 위하여 경문을 베끼는 행위이다. 어눌한 그 행보는 ‘스쳐간 숱한 인연을 공손히 받드는 일’로 공양하고 있다. 무릇 이생에 좋은 업을 짓고 살 일이다. 시인은 ‘봄, 개불알꽃’이란 또 다른 시에서 ‘해사하던 한 때를 한 발 한 발 복사하며 / 올 듯 말 듯 깊어온 봄 / 방점을 찍어가네‘라고 노래하고 있는데, 그와 같은 맥락으로 생의 걸음을 떼는 형국이 ’자벌레‘의 운용에 전이되고 있다.

 

미상불, 우리는 필자가 노스님의 말씀을 ‘새겨듣던 인연으로’ 이 세상 다하는 날까지 서로에게 위안을 주는, 서로에게 행복을 주는, 서로에게 기쁨을 주는 따뜻함으로 기억되는 이가 당신이기를 그리고 나이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지금의 당신과 나의 인연이 그런 인연이기를 소원해 본다.

 


포토

더보기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