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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없던 나라를 새로 만들다.

<경인뷰 데스크 칼럼>
이승만이 건국의 아버지 이거 웃기는 짬뽕이다.

어쩌다가 철 지난 건국절 논쟁이 다시 불이 붙었는지 이유는 명확하다. 국가의 일부 고위직 인사들이 요직에 앉으면서 일본의 주장과 선이 닿아 있는 듯한 그들만의 주장을 되풀이하며 식민사관을 국민들에게 강요 안 하는 척하며 강요하기 때문이다.

 

 

‘건국’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나라를 세우는 것이 건국이다. 지금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일부 보수층의 주장대로 라면 1948년 이전에 없던 나라를 이승만이라는 사람이 나라를 세운 것이 된다. 그들의 주장대로 하면 1948년 8월 15일 그 이전에는 대한이라는 말을 쓰는 나라가 한반도에 없던 것이 된다.

 

그러하다면 1948년 이전에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며 죽어간 수많은 독립열사들의 나라는 어디에 존재했었던 나라일까? 유관순 열사가 목놓아 불렀던 대한독립 만세의 나라는 어디에 있으며,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은 어떤 나라의 독립을 위한 저격이었을까? 독립운동은 주권을 상실한 나라의 국민이 나라를 되찾자고 한 것이다. 그런데 대한의 건국일을 1948년으로 하면 그 이전,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웠던 그 수많은 독립의 역사를 지우게 된다. 일본이 가장 원하는 그림이다. 그것에 동조하는 자를 요즘 말로 하면 뉴라이트라고 하던가!

 

이어 더 가관인 것은 국민에게 돌팔매질을 맞아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난 이승만에 대한 추앙 이다. 부정선거까지 하며 권력의 지키고자 했던 이승만은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잡자는 반민특위를 강제 해산시켰다.

 

그것도 모자라 6.25 전쟁 당시에는 자기 혼자 살겠다고 서울에 남아 있던 사람들에게 전쟁 잘하고 있다며 거짓말을 하고 피난했다. 덕분에 한강을 건너지 못하고 죽어간 사람이 부지기수다. 왜구를 피해 의주로 도망간 조선 선조 임금도 자신의 백성을 희생시켜가며 혼자만의 안위를 챙기지는 않았다. 적어도 눈치는 봤다.

 

전쟁 후에는 부정부패를 일삼다가 결국 4.19에 들불처럼 일어난 국민 저항에 침몰하고 해외로 도피한, 우리나라 헌정사상 가장 부끄러운 독재자 중 한 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을 추앙해야 한다며 건국의 아버지 운운하는 것은 4.19 혁명에 대한 배신이다.

 

4.19혁명에 대한 백과사전적 평가를 보면 “1960년 4월 대한민국에서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항거해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대한민국 제1공화국을 끝낸 민주주의 시민 혁명. 국제적으로는 아시아에서 드물게 성공한 민주 혁명으로 평가된다.”라고 적혀있다. 지금 우리가 누구 하나 지키자고 4.19 정신 따로, 이승만 따로 기억해야 하나 묻고 싶다.

 

건국절 논란에 이어 몰지각한 보수들이 툭하면 들고나오는 빨갱이 이야기도 요즘 들어 더욱더 가관이다. 나라가 있어야 이념도 있는 법이다. 민주주의 혹은 공산주의 이념이라는 것은 국가의 운영체계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국가의 운영체계는 국민들이 정하면 그뿐이다.

 

우리나라의 해방에 앞서 몇 개월 먼저 독일로부터 해방된 자유 프랑스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드골은 “국가의 운영체계를 놓고 싸우는 것은 용서받을 수 있으나, 민족을 배반한 자는 용서할 수 없다”며 친 독일 프랑스 비시정부의 수장을 처형했다. 처형당한 사람은 드골의 상관이자 프랑스 1차 대전의 영웅이었던 ‘패랭’이었다. 사상이나 이념 이전에 민족에 대한 배반은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뜬금없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에게는 이념의 칼을 들이대고 친일파의 명예를 회복시키겠다는 일갈을 하고 있는 독립기념관의 장과 그를 임명한 자의 푸닥거리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부끄러움은 우리만의 몫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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