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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바다를 산책하다

신이 디자인한 섬 제부아일랜드 ②
시인의 노랫소리와 파도가 만들어 낸 이중주


시인(詩人)을 꿈꿔왔던 왔던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이 18세기 영국의 계관시인 ‘알프레드 데니슨’이다. 혹시 이름을 모른다고 해도 ‘모래톱을 넘어서’라는 그의 시 또는 ‘이녹 아든’이라는 지고지순한 사랑의 서정시는 들어봤을 확률이 높다. 그의 시는 일본어로 번역돼 ‘빙점’으로 소개되고 한국에서는 수십 년간 드라마의 단골소재로 쓰였던 것이 ‘데니슨’의 ‘이녹 아든“ 이다.

<연재의 순서>
①매향리 평화생태공원 조성 ②화성드림파크, ③에코팜랜드 조성,
④궁평리 및 제부도 개발 ⑤당성 복원 등







    ▲ 제부도 등대와 낚시하는 사람들 
      그리고 기회를 엿보고 있는 갈매기

   
해안 바닷가에 살던 어린 아이들이 성장해가며 서로 사랑하고 혹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삶이 소중하고 중요했는지를 알려주는 ‘시’이자 소설에 가까운 ‘이녹 아든’의 배경을 한국에서 찾아보라고 하면 경기도 화성의 제부도를 권하고 싶다. 하루 두 번 바다길이 열려 사람의 왕래를 허락하는 제부도는 서해안 특유의 밀물과 썰물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길이 열린다는 것은 썰물로 인해 바닷물이 멀리 빠져 나갔을 때 섬에 들어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갯벌 사구위에 만들어진 도로는 구불구불 섬으로 이어지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전한다. 어린아이는 업고, 노인은 손을 잡고 함께 건너간다는 제부도의 진입로는 1.2km로 걷기에 딱 적당하지만 이 마저도 자동차로 들어가는 것이 요즘의 일이다. 제부도 진입로에 들어서면 끝없이 펼쳐진 갯벌위로 갈매기들이 날아든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멀뚱멀뚱 사람을 구경하는 듯한 갈매기들의 환영인사를 받으며 들어서는 제부도는 무공해 섬이다.

섬에 들어서서 오른쪽 길(북서면)로 가면 먹을거리 집들이 길게 늘어져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갯벌이 사람에게 주는 풍요로움을 자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갯가재, 조개, 바닷게, 숭어, 망둥이’등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재수 좋으면 ‘뻘낙지’까지 조우할 수 있다. 식도락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쉽게 지나치기 어려운 유혹들이다. 먹을거리들을 뒤로 하고 들어서는 길 위에서 멀리 바라보면 ‘전곡항’이 가물가물 보인다. 부자들의 상징이라는 요트들이 줄을 이어 내 달리는 모습은 한 폭의 수채화에 가깝다.

섬의 핵심부에 속하는 탑제산 방향으로 갈수록 수채화는 유채화로 변하기 시작한다. 북서쪽 끝에 위치한 3층 높이의 빨간 등대가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빨리 와서 함께 사진을 찍자고 종용한다. 어쩔 수 없이, 누구나 다 핸드폰을 꺼내들고 등대 앞에서 사진 몇 장은 찍어야 할 만큼 제부도의 등대는 매혹적이다. 울산 간절곳의 등대가 아침을 상징한다면 서해 제부도의 등대는 일몰을 상징한다. 이녹 아든이 봤던 해질녘의 모래톱이 화성 제부도에 있다.

등대 옆으로는 낚시를 할 수 있는 간이 시설이 잘 꾸며져 있다. 그런데 낚시를 하는 사람보다는 그저 바다를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더 많다. 등대를 등 뒤에 두고 먼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야에 요트 한척이 지나가며 멋쩍게 손을 흔들고 있다. 덩달아 사람들도 함께 손을 흔들어 준다. 바다가 만들어주는 반가움이다. 그럼에도 무심한 낚시꾼은 강렬한 햇볕을 피해 한적한 자리에서 물고기와의 대화에 열중하고 있다.


   ▲ 제부도 탑제산 옆 산책길에서 만나는 갈매기들

등대를 빠져 나오면 제부도 제일 절경이라는 탑제산 해변 산책길을 걸어볼 수 있다. 탑제산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산책할 수 있도록 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해안가를 망가뜨리지 않고 그 위에 데크를 깔아 만들었기 때문에 더 유명한 탑제산 산책길은 평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탄성을 내며 오가고 있다. 해변 자체를 즐길 수도 있지만 산책 그 자체를 즐기기에도 딱 좋은 지점이 산책코스다. ‘바다를 산책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다리를 따라 걸어 들어가면 탑제산 아래 해변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는 사람과 산책로 위에서 풍경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대화가 쉽게 들어온다. “여보 뭐 나왔어”, “아직, 근데 뭐가 많아”........,



   ▲ 제부도 탑제산 산책로

   ▲ 제부도 탑제산 산책로 아래 해변

산책로 중간에 이르면 바다를 조망할 수 있도록 한 시설과 산책도중 잠깐 앉아서 쉬어갈 수 있는 의자들이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의자 앞으로는 커다란 유리가 있어 잠시 아무생각 없이 바다를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바다를 더 깊숙하게 멀리 볼 수 있는 망원경 두 대가 설치되어 있어 지나가는 요트와 갈매기들이 만들어 내는 왈츠를 더 세밀하게 볼 수도 있다. 제부도가 2017년 세계적인 디자인 어워드 ‘레드닷’ 2관왕을 수상했다는 것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산책로 아래에서는 무심하게 낚시를 하는 사람들과 갯벌에서 무엇인가를 찾는 사람들의 재잘거림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횡적압력을 받아 융기한 섬 제부도는 퇴적암들이 바다로 이이지면서 많은 생물들이 쉴 공간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생물들이 숨어든 흔적을 찾아다니는 사람들과의 숨바꼭질은 제부도가 생태학적으로 건강하다는 증거다. 그래서인지 서해에서 불어오는 편서풍에 비린내가 거의 없다. 신선한 바람이 자꾸 등을 밀어 더 걸어보라 재촉해 다시 섬 안쪽으로 걸어가면 제부도의 정식 해변이 보인다. 모래사장 위에 병정들처럼 줄서 있는 파라솔은 제부도가 휴양지임을 말해준다.


   ▲ 제부도 서쪽 해변

해변 뒤에는 차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직선의 도로가 남쪽으로 나있다. 섬의 남쪽 끝에는 제부도의 또 다른 명소라는 ‘매바위’가 있다. 멀리 서있는 매바위와 방금 걸어온 탑제산 사이의 직선해변이 제부도의 황금 휴식지이다. 해변 뒤 도로를 점령하고 있는 울긋불긋한 식당과 카페들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그리고 매바위와 탑제산 중간 쯤, 도로위에는 6개의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아트박스가 있다. 가끔 아름다운 곡선을 자랑하는 자동차들이 수상했다는 세계3대 디자인 상중에 하나인 어워드 레드닷을 제부도 아트박스가 올해 받았다고 한다. 딱 보면 받을만하니 수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다를 그냥 조망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 조망할 수 있도록 한 구조물이다.

제부도에 와서 탑제산 정상을 올라가보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 아직 정비가 덜 되어 있는 탑제산 정상가는 길은 가파르지만 워낙 구간이 짧아 쉽게 오를 수 있다. 다만 숨이 좀 찰뿐......,


   ▲ 탑제산에서 보이는 서해 바다

확실히 산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산책로에서 바라보는 바다와는 다른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바닷물이 갯벌과 만나 부서지면서 만들어내는 포말은 흙을 털어내며 빛을 내지만 산위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출렁임의 이어짐과 푸른빛이다. 8월의 숲이 뿜어내는 열기도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마주하면 더위를 한 수 양보해주는 미덕을 발휘한다. 탑제산 북쪽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전곡항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대부도의 풍력발전소 풍경과 전곡항의 모습에 넋이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육지와 제부도를 잇는 사구 위에서는 차들이 끊임없이 오고 가며 동영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제부도의 오후는 물이 들어오는 시간이다. 서둘러서 짐을 챙기고 떠나지 않으면 이곳 제부도에서 하룻밤을 묵어야만 한다. 제부 일몰을 카메라에 담지 못하고 떠나는 발걸음에 아쉬움이 묻어난다.

전경만 기자. 사진 : 김예진 기자./ jkmco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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