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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의 애국가가 불편한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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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하지 않으면 과거는 되풀이 된다

지금까지 써 왔는데 불편하지 않다는 애국가는 음악계의 대표적인 친일파인 고) 안익태가 작고한 곡이다. 작사가는 친일의 거두 윤치호 라는 설도 있고 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라는 설도 있으나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해방 후 지금까지 애국가에 대한 논란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친일파의 노래를 굳이 애국가로 불러야 되겠느냐는 교체요구에서부터 6`25를 지나면서 우리나라를 지탱해 왔던 노래이며 관행적으로 써 왔으니 교체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까지 다양하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안익태의 애국가는 여전히 공적행사에서 불리고 있는 노래다.

 

작곡가 안익태를 옹호하는 사람은 “이차대전 말, 서양에서 작곡가의 생활을 하려면 누구나 일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안익태도 일본의 눈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작곡활동을 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구차한 변명이다. 친일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일본과 친한 사람이고 친북은 또 말 그대로 북한과 친한 사람이다. 그러나 친일에는 두 가지의 성격이 있다. 일본의 서슬 퍼런 칼날이 무서워 어쩔 수 없이 ‘하는 척했던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적극적으로 일본을 위해 일한 사람과 반대로 적극적으로 일본과 싸운 사람도 많다.

 

36년 이라면 긴 세월이다. 그 긴 세월동안 일본 제국주의 아래 살아왔던 사람들 중 일본의 눈치를 안 본 사람은 없었을 것이지만 일본에 대항에서 싸운 사람도 많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1945년 8월15일에 독립이 가능했었다. 일본에 저항에 싸운 사람이 없었다면 일본의 패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8월15일 독립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 패망일인 1945년 8월15일은 2차 대전 종전기념일에 많은 나라가 다 독립한 것은 아니다. 연합국의 일원으로 연합국과 함께 싸운 나라들만 독립을 했다.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 중 8월15일 날 독립한 나라는 드물다. 그러나 우리 한민족은 임시정부를 만들고 무력부대를 만들어 끝까지 저항했으며 만주에서 그리고 일부는 필리핀에서 미군과 함께 싸웠다. 그것이 독립의 기초가 된 것이다.

 

반대로 우리에게 안익태와 같은 적극적인 친일부역자만 있었다면 우리의 독립일은 1945년이 아니라 47년 이거나 50년대를 넘어설 수도 있었다. 제국주의 시대에 저항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밑바탕이 되어 종전기념일에 독립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역사다. 일부 사람들은 지금의 애국가가 불편하지 않다고 계속 쓰자고 하지만 친일파가 만든 노래가 불편한 사람도 아직 생존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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