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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혼 나혜석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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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옥

이순옥(1960~ )

 

경남 사천 출생

1981년 ‘경남수필’ 신인상 등단

수원문인협회 회장 역임, 한국예술문화봉사단장 회장

수원예술인상, 대한민국 예술인상, 수원문학대상

시집: ‘불의 영가, 나를 찾아서, 空, 불꽃혼 나혜석 연작시’ 출간

 

 

기댈 가슴 없어

허공을 바라본다

아픈 세상의 슬픈 그림자

시대를 초월한

이 무한한 암흑의

터널을 깊이깊이

지나가고 있다.

 

시 읽기/ 윤 형 돈

 

나혜석은 누구인가? 정수자 시조시인의 표현대로라면 ‘세상의 돌멩이쯤 콧등으로 받아치며’ 온몸과 불꽃 혼으로 저항했던 불굴의 여전사요, 가부장국 철옹성의 편견과 질시에 맞서 싸운 그야말로 ‘외로운 검객’, 한마디로 ‘너무 이른 선각의 사람’이었다.

 

하면, 이 글의 필자인 이순옥은 누구인가? 원래는 ‘불꽃혼 나혜석’이란 소설을 집필하는 데 몰두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의 상황이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후유증으로 오른쪽 마비가 온 절체절명의 순간에 쓰여 진 처절한 병상 기록의 간증인 것이다. 왼손가락으로 겨우겨우 천형의 일지를 쓰다 말다 재활치료를 거듭하며 결국 ‘이전의 나는 죽고 새로운 나로 태어난’ 기독교적인 거듭남의 신앙고백을 실토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그녀의 글은 ‘나혜석’이란 실존인물이 자신의 몸속에 빙의되어 구술하는 거와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기구한 삶을 재현하는 수기 형식에 자신의 투병체험을 이식하고 있다. 무엇보다 문학을 하고 서양화를 그리고 수원을 연고지로 하는 삶에서 서로 간에 ‘신비로운 굴레(神勒)’와 같은 동질감을 확보했을 터이다. 어쩌면 당대의 세상은 평범하지 않은 그녀들의 삶을 자꾸만 바깥세상으로 밀어내려 했으나 그럼에도 불굴의 의지 하나로 도저(到底)한 허무의 세속주의를 관통했다고나 할까?

 

여하튼 그녀들의 전쟁은 ‘인형의 가’에서 탈출하는 해방가를 노래하면서 부터 이미 기존의 가치를 전복하는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을 전개하고 있었다. 또한, 이성은 감각으로, 정의는 우아로, 용기는 응양(鷹揚)으로 대한다는 나혜석이 지향하는 특유의 여성상은 무엇을 암시하는가?

 

결국은 ‘애도 집도 다 앗긴 채’ 떠돌이 행려병자로 마감한 슬픈 운명을 미리부터 배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작자 자신이 나혜석의 화신이 되어 읊었을 100여 편의 시편에 고스란히 그런 맥락의 기운이 행간에 스며있음도 결코 우연은 아닌 것이다.

 

‘기댈 가슴 없어 / 허공을 바라보고 / 아픈 세상의 슬픈 그림자‘가 되는 이유는 결국 ’시대를 초월한 / 이 무한한 암흑의 터널‘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나혜석은 ’인형의 家‘에서 깨우침의 배아(胚芽)인 어린 소녀들에게 견고히 닫힌 철옹성의 편견을 어서 박차고 나오라고 그토록 절규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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