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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서정주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서정주(1915~2000)

전북 고창, 아호는 미당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31년 중앙불교전문학교에서 수업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벽’이 당선, ‘시인부락’ 창간, 주간
1941년 첫 시집 ‘화사집’ 출간
1960년 동국대 교수
1977년 한국문인협회 회장
2000년 금관 문화훈장
생전에 15권의 시집 1000여편의 시를 남김

시읽기 /윤형돈

지존(至尊)은 함부로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동치미 국물처럼 속 시원한 서정주 시의 사상적 원숙미와 시적 구성력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의 작품을 무엄하게 건드리다니, 그러나 나는 대입 수능 수험생이 아니다.

‘내 마음 속 우리 님’이 외나무다리를 건널 때, 어여쁜 눈썹달이 뜨는 마음의 고향을 생각한다. 달뜬 마음을 달래면서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다가 결국은 헤어지고, 결별한 아픈 그림자를 밟고 돌아서야 할 때는 여지없이 ‘동지섣달’ 밤하늘에 초승달이 떴다, 움푹 팬 상처의 조각달은 너무 멀리 있어 춥고 스산한 심경을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동녘에 떠서 서쪽으로 지는 초승달은 날을 세우다가 너무 금세 사라진다. 영원성이 없으므로 ‘즈믄’ 천년의 밤을 마음속에 아로새길 불멸의 사랑이 필요하다 이때 시인의 상상력은 사랑하는 님의 ‘고운 눈썹’을 ‘꿈으로 맑게 씻어서’ 천공에 이식하는 불가항력의 배치로 한 순간에 정신의 긴장과 감정의 응축을 포착하였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의 표상인 ‘매서운 새’와 맑게 씻은 눈썹달의 정신과 정신의 마주침이란 고결한 조우를 깨닫고 한없는 외경심이 우러난다. 그처럼 지고한 사랑의 수묵화를 발견하여 교본으로 따라하고 시늉하고 흉내 내며 비스듬히 경건하게 비끼어 갈수만 있다면, 그것은 곧 숨겨진 사랑의 비의(秘儀)를 실천하는 위대한 행적이 되리라!

지금 우리는 ‘시늉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왜, 누굴, 아니 무엇을 흉내 내고 시늉하며 한낱 덧없는 사랑연습을 지속하는 걸까. 이심전심으로 둥글게 우주적으로 형통할 때까지 수많은 시늉과 의태와 모의실험과 사랑의 연대기를 누구의 이름으로 언제까지 계속 기술해야 하는가?

얼마 전 딸내미가 수지 ‘동천’동 18층 고층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이사 간 날은 동지섣달 추운 겨울이었다. 지상에서 지상으로 생의 거처를 옮겨도 궁핍의 정신은 여전히 불모의 현실을 낳는다. 어쩌다 베란다 바깥 하늘에 눈썹모양으로 뜨는 초승달을 바라보면서 떠나온 집 생각에 눈물 짓는, ‘동지섣달 꽃 본 듯이‘ 어린 풍경이 도래한들, ’동천‘은 차가운 겨울 하늘이어야 ’매서운 새‘가 그리로 날아갈 것이 분명하다. 갈수록 삭막한 겨울, 오늘도 내 안에 영원으로 이어지는 삼삼한 ’눈썹‘ 하나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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