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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위한 시/ 마종하




마종하(1943~2009)

1943년 12월25일 원주출생, 68년 동아일보 ‘겨울행진’, 경향신문 ‘귀가’ 신춘문예 동시 당선으로 문단 데뷔 참신한 감각으로 꿈의 밀도와 탄력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평가받음, ‘노래하는 바다’, ‘활주로가 있는 밤’ 등의 시집과 장편소설 ‘하늘의 발자국’이 있음.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 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가를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시 읽기/ 윤형돈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날에 태어났음일까 이 시를 지은 이는 참신한 감각으로 꿈의 밀도와 탄력을 노래한 시인으로 평가 받는다. 시인 스스로를 표현할 때도 시인이 아닌, ‘스인’ 곧, ‘스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걸 보면 마음이 따뜻하고 키가 큰 사람이었음에 틀림없다 실제로 그는 평소 자기 아집과 독선의 웅덩이에 갇혀 옹졸하고 같은 말만 되풀이 하는 도량이 좁고 간사한 양두구육의 소인배(小人輩)를 멀리하라고 주문하셨으니 시인의 감각은 첨예한 바늘 끝이요, 서늘한 시적 오만과 자존이 단번에 느껴진다.

바둑의 고수 이창호 9단이 중국 최대 시낭송 사이트 웨이나두스 ‘너를 위해 시를 읽는다’ 프로그램에서 마종하 시인의 ‘딸을 위한 시’를 낭송했다고 한다. 나는 이 시를 이른바, ‘野史의 끝판왕’을 만나러 간 저녁 무렵에 허름한 기원의 낡은 바둑잡지에서 우연히 읽게 되었다. 왜 이 시가 그토록 치열한 승부의 피 말리는 세계를 감내하는 ‘바둑의 돌부처’인 이창호 9단에게 꽂히게 되었을까에 대한 의구심은 시 행간에 ‘관찰’이란 단어에서 쉽사리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관찰은 사물의 현상이나 동태 따위를 주의하여 잘 살펴봄이다.

시인 아비가 딸을 위한 기도와 바램은 그저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아니, 시인 부모가 아니라도 자라나는 아이들에겐 꿈의 탄력과 밀도를 수시로 들려줘야 한다. 독하게 공부 잘해서 스카이 캐슬(SKY CASTLE)을 넣어도 좋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 현상과 주변을 눈여겨 잘 살펴보는 인성과 감성교육이다. 양파는 언제 뿌리 내리고 사람은 언제 웃고 울며 왕따 당해 혼자 우는 아이의 고민은 무언지 급식비가 밀려서 점심을 굶고 다니는 친구는 없는지 잘 살펴보고 같이 나누어 먹으며 사이좋게 지내라는 것이다.

검은 돌과 흰 돌을 예의주시 촌철살인의 기개로 관찰해야 하는 바둑인이 가로세로 19줄, 361개의 교차점을 이루는 바둑판 위에서 우주의 질서를 읽고 천하를 평정한 연원은 그처럼 어릴 적 조그만 관찰 DNA의 누룩 덩어리가 크게 부풀고 팽창한 결과이다. 마종하 시인은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유언에서 ‘분에 넘치는 행복이었다.’라는 쪽지를 남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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