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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을 보며/ 유선

유선(1938~)

충북 보은, 서울 문리사대 경기대 대학원 졸업 ‘시조문학’을 통해 문단에 데뷔
시조집 ‘세월의 강을 건너며’ ‘메아리치고픈 내 목소리’ ‘겨울나무로 서서’ ‘꽃피고 지는 사이’‘신 귀거래사’ ‘전원일기’ ‘간이역 풍광’ ‘남한강 유역의 창’ ‘수원의 새’ ‘수원 비둘기’ 등
현, 경기시조시인협회고문



6.25가 터지던 날 심어놓은 어린 나무

지금은 천지를 덮는 어른으로 자라나서

몹쓸 짓
모두 다 품어
동 틔우고 있구나

나무 심던 어린이도 어느새 할배가 되어

추억을 걸어놓고 얘기 끈을 꼴 때마다

새들도
흘러간 세월을
쪼아 먹고 있구나



시 읽기/ 윤형돈

처음엔 두 눈을 의심했다 시 제목이 ‘김정은을 보며’ 라니, 두말 필요 없이 그 이름은 북한 최고 통치자이며 국무위원장이다. 조부가 김일성이고 부가 김정일, 여동생이 김여정으로 현재 서방 외교무대에서 막후 실세로 절대 권력을 밀착 보좌하고 있는 모양새다. 때마침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2차 북미 핵 담판의 결과가 ‘협상 결렬’로 끝났다는 속보가 전해온다.

노시인은 지금 38년생, 84년생인 김정은과는 무려 46년 나이 차이가 난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온 몸으로 통과한 남한의 어르신이 상대 진영의 어린 통치자에게 보내는 연민과 애정의 충고로 읽었다. 동족상잔(同族相殘)의 ‘6.25가 터지던 날’, 이식된 ‘어린 나무’의 말로는 ‘천지를 덮는’ 괴물나무로 변했다.

사태 진 머리에 땅딸막한 몸매와 파격을 부수는 파안대소, ‘나무는 그 열매로 안다’고 했던가!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 게 상식의 법이다. 혹시나 서정시의 고생대층인 영변 진달래꽃 동산이 어느 날 갑자기 우라늄 핵산이 되어 전 세계를 핵핵거리게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호시탐탐 위험한 뒷거래를 자행하고 있는 외세의 ‘전지적 참견’에 시인의 분노는 지금 극에 달해 있다.

‘몹쓸 짓 / 모두 다 품어 / 동 틔우고 있고나’ 통탄의 대상인 악의 씨는 악의 꽃을 피워 또 다른 바람을 몰고 다니며 천지를 위협하고 있다 ‘나무 심던 어린이도 어느새 할배가 되어’ 지난날의 추억을 등불 아래서 아름답게 들려주건만, ‘수원비둘기’를 자처하는 노시인은 지금 행궁동에 사는 환자처럼 갈수록 흉흉한 소식에 놀라며 혹은 반도가 앓고 있는 ‘수원 새’의 상징으로 ‘흘러간 세월을 쪼아 먹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필자가 쓴 유선 시인의 열 번째 시조집 ‘수원비둘기’ 출간 축시를 참고로 올려본다.

“유불선에서 불의 자리를 시조의 울림으로 채우신 분입니다. 평화의 상징은 어느새 비만의 비둘기로 세인의 발끝에서 뒤뚱거립니다. 장안공원 노숙인 벤치에 서면 저들보다 먼저 맥문동이 푸른 새아침을 쪼고 있으니까요.

성문 밖에서 그 어떤 동심원을 그리며 사셨을까 귀밑머리 자화상엔 설핏하니 지나온 흔적들이 보입니다. 험준한 세월의 강둑에 농막 하나 지어놓고 수수밭 시간들을 지켜보셨습니다. 행궁동 골목 창백한 기침소리 뒤로 떫고 푸르던 감은 노을빛 홍시가 되었고, 곰삭은 시편들은 그러구러 열무 열 단의 푸성귀로 화답합니다. 재 너머 전답엔 또 얼마나 많은 시조의 씨앗을 뿌리셨는지 남한강 기슭으로 부활의 갈대 심지가 밤낮없이 헤살대고 있습니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수원에서 한강까지
행궁에서 보은까지
문학인의 집에서 문학의 집까지
시조의 뿌리에서 시의 개화까지

아리랑 아라리요 더덩실 춤추며, 마른 뼈에 피가 돌도록 바다를 연모하는 아아! 모국어의 강물이 되신 이여, ‘화성행궁의 봄’을 기다리는 정조 어진의 화령전 작약 뜰을 나혜석의 절망으로 걸어 봅니다. 구구구 속울음 삼킨 ‘수원 비둘기’ 사연에 문득, 귀거래사 가슴 열고 보은의 구름다리 건너는 당신의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견습 환자들이 극장의 우상을 마구 섬기는 계절에, 의를 구하려는 어르신들이 시퍼런 칼럼을 퍼 나르며 성스런 조반상을 차리기도 합니다. 일상이 잡초처럼 무료해지는 날이면 더욱 그런 풍경이 그리워집니다, 선생님.“

2017년 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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