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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 이상정

이상정(1960~)

경북 칠곡 출생, 강남대 영문과 졸업
1993 ‘수원문학’ 신인상, 1995 ‘시와 시인’으로 등단
시집: 입술 도장 편지, 붉은 사막, 인생계략(Life-Plot)
경기문학상, 한국 글사랑 문학대상우수상,
국제펜한국본부, 한국경기시인협회, 수원시인협회, 표암문학회 이사 경기펜문학 사무국장



꼬리가 아홉 개 달린 마담
사람의 애간장을 녹인다는 소문
오백년 묵은 꼬리가 갈라져 아홉 개
개꼬리 삼년 묻어나도 여우 꼬리 안 되는 데
습하고 어두운 지하 홍등 아래
월하미인되어 교활하고 간교하여
정신을 못 차리게 하네
백수와 며칠을 지내게 된 클레오파트라
이태백의 무덤을 파 영혼을 깨워
시를 짓게 하네, 아뿔싸!
복숭아 가지로 후려쳐
진상들을 쫓아낸다
다인 카페 마담.

시읽기/ 윤형돈

구미호 외전(外傳)을 읽는다. 시인은 전설 속에 박제되어 있는 구미호 이야기를 현대시에 맞게 개조하는 능력을 지녔다. 그 이야기는 이미 ‘구미호 가족’으로 인간세계에 등장하는가 하면, 변신에 변모를 거듭하는 사랑이야기로 거침없는 상상력의 반전을 도모한다. ‘전설 따라 삼천리’와 같은 구전(口傳)은 언제나 판타지적 요소가 강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좋은 소재가 된다. 시인은 이 시에서 전설적인 탈현실적 공간을 ‘다인(茶人) 카페’로 설정하여 시의 외연(外延)을 확장하고 있다. 온 동네 남정네를 홀리고도 남을 ‘천년 묵은 여우’를 시적 영감으로 불러내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유희하듯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는 지금 절세미인으로 환생하여 시인이 사는 동네에서 신비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뭇 남자들의 ‘애간장을 녹인다는 소문’이 파다하여 들렀더니 정말 월하미인(月下美人)으로 밤에 피는 선인장이요, 한밤중에만 피는 신비로운 야화로 그 존재는 가히 절대적이다. 여인은 ‘습하고 어두운 지하 홍등 아래서’ 수밀도의 가슴으로 밤마다 손님을 기다린다.

달도 없는 어두운 밤을 가는 떠돌이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고달픈 인생살이 어디 하나 기댈 곳 마땅치 않다. 그때 홀연히 나타난 영물(靈物)은 지친 마음 달래며 홀로 걷는 나그네 시인 과객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하다! ‘백수가 만난 클레오파트라’의 화신이라면, 시백(詩伯)인 ‘이태백을 깨워’ 시상의 샘물을 맘껏 마셔도 여한이 없으련만! 그러나 이 시대가 낳은 ‘구미호’는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고 ‘복숭아 가지로 후려쳐’ 진상 손님들을 쫓아낸다고 하니 우리네 ‘다인 카페 마담’은 병든 현실에 뿌리내린 건강한 도시 여우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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