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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소/ 임병호

임병호(1947~)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났다 원적은 화성시 마도면 금당리
1964년부터 화홍시단 ‘시향’으로 문단활동을 시작하였다
경기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 역임
<한국시학> 발행인, 국제 주간
펴낸 시집은 ‘환생, 신의 거주지, 단풍제, 적군묘지’ 등 18권에 이름



오늘 하루도 산야에서
짐승처럼 달렸습니다
사람들과 맞서 이겼으며
마음도, 몸도, 두 다리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저녁이 오면 하냥 삼삼합니다
세월교歲月橋를 건너
그 아늑한 산골짜기 보금자리로
지금 꿈결 걷듯 돌아갑니다

시 읽기/ 윤형돈

오늘 하루도 산야에서, 이 세상 넓은 싸움터에서, 인생이란 진영 안에서 ‘짐승처럼 달렸습니다.’ 말 못하고 쫓기는 마소馬牛가 되지 않기 위하여 상사의 오만가지 갑질을 다 견디며 생계를 벌기 위하여 그 잘난 승진을 위하여 우직하니 피눈물 나도록 달렸습니다. 하루치의 일당을 벌기 위한 생존경쟁과 새벽 네 시의 일자리 찾는 약육강식은 차라리 즐거운 생의 이명耳鳴으로 듣겠습니다. 생성, 발전, 소멸의 등식은 진화론자에게 맡겨버리고, 때로는 형이상학적으로 선한 싸움 다 싸우고 개선하면 의義의 면류관을 수여받고 바야흐로 나의 영웅이 될 것입니다.

오래전에 귀에 익은 출정가出征歌는 가급적 롱펠로우의 ‘인생찬가’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요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한참을 적과 싸우는 줄 알았더니 뒤늦게 알고 보니 아군에 총질을 하고 있더란 말입니다 진정한 적은 내 안에 있었습니다. 인생이란 고약한 싸움터에서 ‘지옥의 묵시록’을 읽는 게 어디 한 두 번인가요? 이게 ‘사람들과 맞서’ 싸워 이긴 결과라면 정말 참담합니다.

그러구러 이제는 그 놈의 악다구니 전쟁을 치르느라 ‘몸도, 마음도, 두 다리도’ 모두 지쳤습니다. 다행히 다치진 않았지만, 피폐하고 지쳤습니다. 상처뿐인 영광입니다. 하마 귀소본능은 어쩌지 못하는 가 봅니다. 해지고 저녁노을이 내리니 술 생각도 절로 나고 떠나온 고향, 집 생각에 마냥 눈물이 납니다.

오래전에 떠나온 집과 애인의 둥지가 그립고 보니 여우도 굴이 있고 방황하는 나도 이젠 떠돌이 신세를 접고 처소를 찾아가야 하겠습니다. 내가 자란 서식처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나온 세월은 참으로 살같이 빠른 광음이었습니다. 하필이면 이름도 삼삼한 그 ‘세월교歲月橋’ 다리를 지나 부모 곁으로 갑니다. 집으로 가는 길이 꿈꾸는 듯 몽환적입니다. 오늘따라 귀소, 귀가, 귀향.. 귀떼기에 ‘귀歸‘가 붙은 말이 다 귀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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