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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배달 청년 오산시장이 되다

오산시민과의 100년 동행
진도 촌놈이 오산 발전을 생각하다

오산의 숨은 경제 동력을 찾아 오산의 100년 앞길을 깔아보겠다는 이권재 오산시장의 생각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 시장이 간직했었던 꿈이었다. 그 꿈이 구체화 된 것은 지난 10년 전부터 이지만 따지고 보면 더 오래전부터 이 시장의 마음속에서 커왔던 생각들이었다.

 

약 28년 전, 이 시장은 겨울의 어느 날, 목포에서의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오산으로 이사를 왔다. 이 시장이 열혈청년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무렵, 아내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일과 사랑, 모든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우유 지역대리점권을 받아 첫 사업을 시작하려던 참 이었다.

 

그런 와중에 이 시장의 매형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오산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처음 이사를 온 단칸방은 부엌과 화장실이 붙어있을 정도로 좁아서 짐도 제대로 풀지 못한 채 다음날부터 우유배달에 나서야 했다.

 

▲ 이권제 오산시장이 지난 5월5일 어린이날 아이들의 행복추구권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모습

 

이 시장의 고생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새벽 일찍, 폐차하려던 처남의 봉고차를 빌려 어린 두 아이를 태우고 오산을 물론 화성과 동탄 곳곳에 우유배달을 했다. 타지 사람이라는 텃새와 문전박대를 당하면서 서러움도 느끼고, 힘들었지만 옆에서 지켜주는 아내와 뒷좌석의 두 아이는 그에게 큰 힘이 됐었다고 한다.

 

이 시장의 오산 우유 대리점은 그렇게 12년간 운영됐다. 그 시간 동안 네 식구가 차 안에서 함께하면서 힘들었지만, 가족이 곁에 있기에 든든했고 행복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고름우유 파동 같은 시련도 있었지만 극복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성실과 신용을 최우선으로 우유 대리점을 운영하면서, 점차 자리도 잡고, 형편도 나아져 갔다.

 

오산에서 열심히 사는 동안 여러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 그중 한 사람이 이 시장보다 먼저 오산에 올라와 약국을 운영하던 사람이었다.

 

약국을 운영 하시는 선배분은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한다. 또 지인의 권유로 한국병원 장례식장을 운영하려고 결심했지만, 이 시장에게는 큰돈이 없었다. 그러나 이 시장에게는 사람이 있었다. 약국을 운영하던 선배의 도움과 지금은 사라진 외환은행 지점장이 신용 하나만 믿고 이 시장에게 대출을 해주었다.

 

이 시장은 이 시절부터 오산에 대한 애정을 갖기 시작했다. 우유배달을 하며 오산 곳곳을 누비고 다닌 이 시장은 오산의 발전에 대해 늘 생각했었다.

 

1989년 1월 1일, 화성군 오산읍은 오산시로 승격했다. 지금은 아파트와 상가가 빼곡히 들어선 운암뜰도 당시에는 허허벌판이었고 아파트라곤 오산IC근처 한주아파트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시장이 오산에 정착하기 전에 오산과 화성은 연쇄살인 사건으로 흉흉했었다.

 

그럼에도 우유 대리점을 운영했었던 이 시장은 봉고차와 오토바이에 우유를 싣고, 국도 1호선을 따라 북쪽으로는 수원영통, 서쪽으로는 화성시 발안, 조암, 남양, 사강 일대를 누볐다.

 

곳곳을 누비는 동안, 이 시장은 어렴풋하게나마 오산시의 발전에 대해 생각했었다. 그런 와중에 이 시장은 오산의 시민들 대부분은 서울과 수원, 화성이나 평택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라는 것과 정주하겠다는 생각보다 돈을 벌면 이사하겠다는 생각들이 많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됐다.

 

이때부터 이 시장은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이미 오산에 자리를 잡고 살고 있고 또 아이들까지 건강하게 커가고 있는 도시가 다른 도시들에 비해 발전의 속도가 더디고 낙후되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한 이 시장은 지난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정치의 중요성에 대한 조금씩이나마 알게 되었다고 한다,

 

▲ 고향인 진도를 종종 방문했던 이권재 오산시장

 

또한, 이 시장은 애초 정치에 관심이 없었지만, 사업이 점차 번창하고, 오산시 축구연합회 부회장, 경기도 축구협회 부회장등 스포츠와 봉사활동에 재미를 느끼고 활동하면서 리더십과 정치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어떤 사람이 지도자가 되고, 어떤 방향과 리더십을 갖느냐에 따라 지역의 운명이 달라진다는 것을 스스로 체득한 이 시장은 지난 2006년 오산발전포럼을 만들었으며 2014년에는 어렵게, 어렵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했었다. “정치만 안 하면 100점짜리 남편”이라는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더 큰 오산, 발전하는 오산을 내 손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결심을 굳힌 이 시장은 신념을 가지고 출마를 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 시장의 많은 지인들은 “호남사람이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해야지 왜 보수당이냐?”는 질문과 걱정을 동시에 하지만 “이미 오산이 고향이 된 사람에게 출신 지역은 큰 상관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그런 신념을 가지고 선거에 계속 도전을 했지만, 정치의 장벽은 높았고,. 시대상황도 좋지 않았다.

 

이 시장이 선거에 출마했었던 시기에 세월호 참사와 보수당 소속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는 일까지 겹치면서 민주당의 바람은 아주 거세게 불었었다. 그럼에도 선거에 안 나갈 수가 없었다.

 

이 시장은 보수당을 책임지는 오산의 당협위원장이었고, 불리한 정세에 좋은 출마자조차 구하기 어려웠던 시기였기에 나가지 않아야 하는 선거에도 나갈 수밖에 없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시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 선거에서 이 시장은 “지난 선거 기간 동안 제가 낙선을 하지 않았으면 오산에 대해 잘 모르고 넘어갔을 부분까지 세세하게 알 수 있었다. 선거에 질수록 오산에 관한 공부가 깊어졌다. 한, 세 번 떨어지니까 오산학 박사가 된 것 같았다”고 회상했었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이 시장은 당당하게 시장이 됐지만, 현 이 시장의 겸손은 지난 선거에서의 패배가 정치인으로서 꼭 필요한 교훈이 됐다고 한다.

 

시장선거에서 이 시장은 여러 가지 공약을 내세웠지만 크게 나누어보면 두 가지다. 하나는 오산의 동력이며 또 다른 하나는 진짜 복지다.

 

▲ 지난 2021년4월, 팽목항을 방문해 아이들의 안전은 시스템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했던 이권재 시장

 

이 시장이 생각하는 오산의 동력은 지난 정권까지 꺼져 있었다. 오산은 민주당이 집권하던 지난 2010년부터 2022년까지 교육이라는 추상적 개념에만 몰두한 나머지 오산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자립적 경제 동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마저 드물어 오산의 경제활동인구는 오산 외부로 나가야 하거나 자영업에 그치는 것이 전부였다.

 

또한, 거의 모든 지자체가 도심 안의 관광상품 개발에 주력함에도 오산에는 그런 노력들이 전혀 없었었다. 쇼핑조차 인근 지자체로 나가서 하는 상황이 지난 10년 간 오산에서 반복됐음에도 누구하나 개선해 보거나 바꾸어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경제활동에 대한 노력들이 없어진 결과는 경기도가 전체적으로 인구폭발을 보이는 것과 달리 오산의 인구를 오랜 시간 동안 정체하게 만드는 원인이 됐다.

 

10년전 수원이 90만이었던 인구가 130만이 되고, 화성이 70만에서 100만명에 이르는 동안 오산은 인구가 21만에서 22만으로 느는 것에 그쳤다. 한 마디로 오산의 성장동력은 꺼져 버린 셈이었다.

 

그래서 이 시장은 시장이 되면 오산의 성장동력을 되살리기 위해 거의 질주하다시피 달렸다. 이 시장의 생각은 좋은 기업을 유치하려면 원활한 교통이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이 시장은 시장이 되자마자 국토부로 달려가 오산의 교통문제와 세교3지구 재개를 협의했다.

 

이 시장의 경부선 철도 횡단도로 조기착공과 동부대로 오산구간 임시개통 및 조기완성, 세교3지구 등에 대한 요구는 협의가 시작됐으며 유의미한 결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공약대로 오산 랜드마크 건설에 대한 큰 그림도 그려나갔다. 오산 랜드마크는 지난 대선에서 당시 국민의힘 당 대표가 반드시 오산에 필요한 그림이라며 적극적인 지지를 약속한 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구체적 성과가 나타날 수 있는 그림이었다.

 

오산 랜드마크는 오산 종합운동장 부지를 팔아 그 위에 오산을 상징하는 초고층 건물을 지어 쇼핑과 관광 그리고 국제회의가 열릴 수 있는 컨벤션 공간을 확보하자는 생각이다. 그리고 오산천과 오색시장을 연결하고 또 오산 독산성까지 산책로를 만들어 오산만의 독특한 마이스 산업을 가져보자는 것이었다. 아직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된 것은 아니나 오산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려는 시도이다.

 

또한. 운암뜰 인근에 가칭 아레나(e-spotrs 전용 경기장)를 만들어 경기남부의 젊은이들이 홍대나 인계동이 아닌 오산으로 모여야 한다는 계획도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아레나 사업은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인공지능형 4차 산업의 총아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적은 예산으로 오산이 경기남부 젊은이들의 성지로 우뚝설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이 시장은 “오산이 성장동력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구조를 가져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줄지은 아파트만으로는 그저 잠을 자기 위해 잠시 머무르는 도시가 될 수밖에 없다”고, 늘 강조하는 이 시장은 “오산이 작다고 생각하는 것은 생각이 작기 때문이다. 크다고 생각하면 해야 할 일이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우선 필요한 것은 생각의 변화”라고 주장하고 있다.

 

복지 분야에서도 이 시장의 생각은 정친인들이 늘상 말하는 복지와는 좀 달랐다. 이 시장이 생각하는 복지는 단순히 예산을 책정해서 만들어주는 복지는 아니다. 이 시장이 생각하는 복지는 한마디로 ‘시스템 복지’다. 일자리가 있고, 멀리 쇼핑가지 않아도 되는 경제 구조,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면 빈부와 관계없이 당당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보건 시스템, 아이들이 차로부터 위협당하지 않을 수 있는 도로의 설계(쉘터 하우스), 차량의 학교 출입 동선과 학생들의 출입 동선을 분리하자는 ‘셔틀존 도입’에 이르기까지 복지를 시스템화하자는 이 시장의 생각이 아직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시작을 위한 준비는 착실하게 하고 있다.

 

▲ 정치는 항아리처럼, 뚝배기 처럼  해야 한다는 이권재 시장

 

오산시장 취임 1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장은 “반대를 위한 반대가 중앙정치에서 지방정치에 이르기까지 만연한 것이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다. 우리 오산시가 발전하려면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고, 더 나은 선택과 결과를 위한 토론이 더 격렬하게, 자주 일어나야 한다. 오산은 면적은 작지만, 열정 하나만은 경기도 최고이었다. 그 열정이 꺼지지 않고 활짝 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볼 것”이라며 “남은 임기 동안에 자신이 할 일에 대해 끊임없이 점검하겠다”며 우유배달 청년의 원대한 꿈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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