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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 / 황남희

황남희 (1970~)

서울 출생

2018 수원문학 시조 부문 신인상

 

 

굶주린 서류들이 하루 내내 기웃댄다

퇴근 시간 다가오자 제 순서도 잊은 채

무작정 책상 한구석

비집고 들어온다

 

다독인 서류뭉치 서랍 속에 밀어 넣자

달리던 초침마저 가다 서다 반복한다

용케도 꿰찬 시간 끝

서랍 문을 다시 연다

 

매몰된 시간들을 하나둘 일으키며

허기 채운 종이들을 뱉어내는 프린터

빌딩숲 불빛 아래서

눈 그늘이 짙어간다

 

시 읽기/ 윤형돈

 

외견상 시인의 전력은 전무하다. 한 지방 문학의 신인상 데뷔가 전부다. 참으로 황당하고 남사스럽고 희한하다. 그럴까? 그게 전부일까? 온갖 군더더기 이력을 제하고 편집하고 분리수거하고 설거지하고 수리적으로 인수 분해한 결과물을 등재했을 뿐이다. 전과와 전력을 빼곡하게 나열하고 진열하기를 선호하는 자는 일시에 전두엽을 강타 당한다.

 

누구나 지내온 날의 전과와 경력이 없을 수 없다. 다만, 앞으로 인생이란 진영 안에서 누구나 수긍할만한 전투를 얼마나 멋지게 수행할 수 있는 있느냐의 잠재 능력이 문제다.

 

필자가 화두로 삼은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은 1차원이다 우주 안에 있는 것들이 움직이고 차지하는 방향이다 그리고 질량이 없는 것은 시간에 대해 이동하지 않는다. 이 시의 질량은 한도를 초과해 야근의 범주에 까지 이르렀다. 퇴근시간을 넘긴 야근은 분명 초과근무에 해당된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초과근무에 상응하는 댓가를 받아 마땅하다.

 

사무실엔 항상 굶주린 서류들로 붐빈다. 미결제된 것들은 하루 종일 서성이고 기웃거리다 막상 퇴근시간이 임박했는데도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결에 대책 없이 무작정 책상 한 귀퉁이로 비집고 들어온다. 하는 수 없이 다독이고 꿰찬 서류뭉치를 다시 꺼내 정리하는 사이 초읽기에 몰린 시간은 가다 서기를 반복하다 아예 무저갱의 나락으로 매몰되어 버리기 일쑤다.

 

금맥을 캐던 광부가 채굴하다 갱도를 잃은 격이다. 이윽고 허기를 채운 종이들을 뱉어내는 프린터의 종말을 지켜보며 사무실을 나올라치면 빌딩숲엔 이미 어둠의 눈 그늘이 잦아들었다. 일상은 늘 정시에 끝내지 못하는 미완의 뭉치들로 허둥대다 매몰되어 혼돈과 와해의 난맥상을 초래하게 된다.

 

거기에 대응하는 ‘야근’은 생체리듬이 파괴되고 재충전의 시간을 도둑맞게 되는 치명적인 잉여의 산물이다. 야시장으로 가서 하루의 회포를 풀 시간도 충분치 않다. ‘야근’은 신성한 노동을 찬양하는 밤의 근육으로만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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