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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로 때때로 불편한 이웃 일본

한국은 역사 이래 일본에 관심이 없었다.
짝사랑의 방법이 언제나 한참 모자라는 사람의 행동처럼 ~

서기 663년 지금의 금강 하구에서는 4개국이 참전하는 큰 전투가 벌어진다. 경기도에 산재해 있던 백제군과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이 이끄는 백제군은 신라를 위협했다. 그리고 일본 규슈에서는 부여풍을 도우기 위해 약 2만7천여명의 군대를 파견한다. 기겁을 한 신라는 부랴부랴 당나라에 연락해 군사원조를 받아 다시 한 번 백제와 신라가 정면충돌한다. 전쟁의 결과는 백제 연합군의 처참한 패배 이었다. 이때 전쟁에서 승리한 신라는 왜군을 그냥 돌려보낸다. “너희에게 큰 관심이 없으니 돌아가라”이것이 신라군의 방침이었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이후 한반도에서는 왜에게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왜는 언제나 우리에게 관심이 많았다. 마치 짝사랑 하듯 말이다. 그런데 그 짝사랑의 방법이 언제나 한참 모자라는 사람의 행동처럼 삐뚤어 진 것이 일본의 행동이었다. 15세기 들어 항해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일본은 수시로 한반도와 중국을 향해 노략질을 해왔다. 우리는 때려 부숴도 보고, 달래도 봤지만 언제나 일본은 노략질로 대답을 해왔다.

 

크게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부터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당할 만큼 당하면서도 크게 화 한 번 내지 않았다. 중국도 사정은 비슷했다. 일본에게 아예 관심이 없었던 중국은 명나라 시대에 이르러 남부일대가 왜구에게 점령당해 백성들이 큰 고통에 휩싸이자 척계광이라는 장군이 대대적인 토벌을 하기에 이르렀지만 사실 중국이나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일본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동북아시아의 외톨이 일본은 대륙의 관심밖에 있는 국가 이었다. 문제는 우리는 관심이 없는데 저들은 우리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우리들의 놀이에 자신도 끼워달라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중국과 한국이 일본에게 관심이 없었던 이유는 일본이 섬나라라는 지리적인 것도 있지만 특별히 배울 것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었다.

 

원나라가 고려를 침공하고 지배했던 당시, 원나라는 고려의 화려함에 반해 고려의 풍습을 배우고 유행까지 했었다. 조산에 들어와서 청나라는 우리의 학문을 거꾸로 수입해 들어갔다. 그리고 근현대사에 이르러 동북아시아의 외톨이 일본이 잠시 서양과 어울리면서 서양문물을 앞서 배웠다며 야만적인 힘자랑을 했지만 결과는 전범국가로의 전락이었다.

 

과거 일본은 노략질로 관심을 끌었던 비문명국이었으며, 근현대사에서는 전범국가 이었던 나라가 일본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세계규범에 의해 노략질과 무력행사가 어려워지자 생떼를 부리는 국가로 전락했다.

 

그러나 여전히 일본의 문화는 동북아시아 저 바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그저 관심 없는 국가일 뿐이다. 일본이 지리적으로 가깝게 있기는 하지만 일본은 베트남이나 미얀마보다 더 관심 밖의 국가이다. 그래서일까 관심종자 일본은 더 심한 생떼를 쓰며 관심을 가져달라고 아우성이다. 관심종자가 생떼를 자꾸 쓰면 그나마 일본이 세계인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유일한 행사 도쿄올림픽 마저 보이콧을 당하는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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