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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피해를 감수하겠다는데

머리를 조아리자는 제2, 제3의 다까기 마사오는 참수를 해야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기 위해 준비한 나라가 만주국이다. 말이 만주국이지 일본의 대륙정부나 다름없었던 만주국에는 중국침략의 괴뢰군을 키우기 위한 시설이 있었다. 이 시설에 자원입대한 ‘미카모토 오노루’는 만주군 군관학교를 졸업한 후, 성적우수자 추천을 받아,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57기로 입학해 지난 1944년 성적 석차 1등으로 졸업했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이때 미카모토 오노루는 다시 이름을 ‘다까미 마사오“로 바꾼다. 이어 다까기 마사오는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할 때까지 일본 제국이 수립한 만주국의 일제관동군장교로 근무하며 조선의 독립을 방해했던 대한제국의 주적이었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대한제국의 주적이었던 자가 무력으로 장기집권을 하며 여러 가지 후유증을 남겼다. 그 중에 하나가 일본을 대국으로 보는 시각이었다. 단지 근대화 문명에 조금 앞서 있던 일본이었을 뿐 문화적으로 한참이나 후진국에 불과한 일본을 대국 또는 선진국으로 치부하면서 일본을 대국으로 보는 우를 범했다.

 

자본주의 시대에 경제의 크기가 국력의 크기와 비례한다고는 하지만 일본이 대국이라는 개념은 100년도 되지 않은 개념이다. 그 이전에 일본의 개념은 ‘왜구, 남에게 무엇인가를 강제로 약탈해서 먹고 사는 나라, 농사는 잘 돼지만 생활에 필요한 무엇 하나 생산하기 어려운 나라’ 정도 이었다.

 

다까기 마사오가 은연중에 만들어 놓은 일본 대국 사상은 한동안 우리를 위축되게 만들었다. 우리 스스로 연합국의 일원으로 전쟁에 참전해 독립한 것을 “미국 덕분에, 모래알 민족, 때려야 말을 듣는다”등 열등한 민족으로 만들어 놓았으며, 우리의 독립 운동사를 스스로 폄하하게 만들었다.

 

일본 보다 무려 2000년이나 앞서 있던 고도의 문화제국이 단지 36년의 지배를 받았다고 우리 역사 자체를 소극적으로 만든 것이다. 돌이켜 잘 생각해보면 매 세기마다 일본은 우리의 것을 약탈하기 위해 노략질에서부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일본의 침탈을 일삼았고 우리는 늘 막아 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단호하지 못했다. 일본이라는 소국의 침탈에 대해 조선과 명나라는 단호하지 못했다. 일본의 일탈은 그저 귀찮은 침탈정도로만 여겨왔기 때문이다. 그런 귀찮음을 틈타 일본은 늘 큰 사단을 일으켜왔다. 그게 동 아시아의 역사다. 동 아시아의 역사에서 일본이 없는 이유는 일본은 그저 남을 귀찮게 하는 나라 정도로만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귀찮다고 방치하면 일본이 언제나 큰 사달을 일으켜 여러 나라에 큰 피해를 일으킨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국은 이번 일본의 경제 침략에 대해 귀찮다고 말하지 않고 있다. 과거를 거울삼아 그저 귀찮은 소국으로만 여기다가는 국민에게 또 큰 피해가 돌아갈까 싶기 때문이며, 어처구니없는 일본의 대국행세에 진절머리가 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본의 경제 침략에 대해 아직도 일본이 대국이라며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는 제2, 제3의 다까기 마사오들은 존재한다. 그들은 우리가 늘 이겨왔다는 역사를 부정하면서, 국민에게 피해가 있다는 핑계로 정권을 잡고 싶은 모양이지만 이번 일본과의 경제 전쟁에서 국민들은 피해를 감수하겠다고 스스로 자청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 이미 우리가 절반 이상을 이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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