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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바람을 만나다/ 정홍도

정홍도(1942~)

전남 화순 출생

1992 문학예술

1995 문예사조 등단

호국문예공모전 등대 100주년 기념 공모전, 박두진 숭모 백일장

헤르만 헷세 기념 문학상, 울산 고려축제 공모전 수상

시집: 헛된 기다림, 동백꽃 붉은 입술, 비에 젖은 강, 가을이 오면 언제나

한국을 빛낸 문인 명작선 2회 게재

2019 백봉문학상 수상

 

 

저 바닷물에 손 담그면

잉크빛깔 물들여 질까

미역 톳 세모가사리가 몸을 헹구고

전복이 다시마를 답삭이는

포구는 잠잠하다

 

뭍길도 멀리 가슴 띄운 섬

낮은 지붕을 감싼 돌담마다

대를 이은 옛 얘기 소곤대는데

물질나간 빈집에는 검은 염소 울음소리

 

겨울바람도  

유채 잎 파랗게 엎드려 꽃대를 기다리고

구들장 다락논 벼 그루터기는

논물 찰랑 그때 그 물방개를 기다린다

 

어디선가  

맺으며 풀어내는 북장단 앞세워

애절한 판소리 고갯길 넘어오면

바닷물도 울컥울컥 추임새다

 

자갈밭 한 구석에 초분이 누워있다

 

시 읽기/ 윤형돈

 

작자가 詩題로 차용한 완도 ‘청산도’는 흔히 더딘 풍경으로 삶의 쉼표가 완성되는 외따로운 섬이다. 구들장 논을 끼고 범 바위 길을 걸으며 느림의 미학을 칭송하고 걷기 예찬에 함몰하는 객들이 있는가 하면, 빠름의 도시 문명을 벗어나 잠시 들숨과 날숨을 고르는 쉼터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청준 원작의 ‘서편제’ 촬영지로 유명하며 당리 황토 길을 내려오며 부르는 진도아리랑의 한 맺힌 선율이 아직 우리네 가슴을 아리하게 만든다. 주인공 유봉은 송화의 소리에 한을 심어주기 위해 그녀의 눈을 멀게 한다. 남도의 아름다운 자연, 한을 맺고 푸는 사람들의 삶, 우리 소리의 느낌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영상, 가장 낮은 소리로 한 소리꾼 집안의 슬픈 내력을 연대기적 서술로 그려낸 임권택 감독의 명화였다. 영화의 힘은 고난과 만남에 의해 발동하고 혼을 일으키는 소리의 장을 빼어난 풍광의 한 지역을 무대삼아 여과 없이 기술하고 있었다.

 

‘바닷물에 손 담그면 잉크빛깔 물들여’에서 ‘잉크빛깔’은 짙은 청색을 띠고 청보리와 청무우의 청청한 이미지를 담고 달려온다. 손에 물감이 들 정도라니 문득 학창시절 펜촉으로 잉크 물 찍어 필기를 한답시고 끄적거리다 아차! 실수로 그만 교복에 잉크물이 번지던 경험이 오버랩 되는 순간이다.

 

미역이 그 물에 몸을 헹구고 전복이 다시마를 ‘답삭이다’는 자꾸 가볍고 빠르게 들썩이는 바닷물의 한가한 맥놀이가 느껴진다. 2연에 ‘물길도 멀리 가슴 띄운 섬’이란 표현은 절묘하다. 바닷물 위로 배를 타고 나간 길에 가슴을 띄웠다니! 그것은 바다 속에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물질 나간’과 상통한다. 하긴 바다에선 ‘물질’하느라 바쁘고 육지에선 하릴없이 ‘말질’하는 인간들의 주둥이가 미욱하다.

 

설레발치는 육지의 가슴은 ‘빈집에 검은 염소 울음소리‘가 대신하고 있다. 겨울바람은 봄의 절정인 유채꽃대를 ’파랗게 엎드려‘ 기다린다고 했다. 또한 비탈진 산골짜기에 농사짓는 ’구들장 다락 논‘의 풍경도 특이하다. 게다가 어디선가 애절한 서편제의 판소리 가락도 고갯길을 넘어온다.

 

이때 장구 치며 추임새를 넣는 고수들은 인간이 아닌, 바닷물의 철썩 처얼썩 때리고 부수는 소리가 가락을 부추기며 도와준다. 마지막 연의 한 구석에 ’초분草墳이 누워있다‘는 또 무엇인가? 초분은 단번에 매장하기 박정하여 뼈를 먼저 가려내기 위해 탈육脫肉시키는 과정이다. 일종의 씻김굿으로 뼈에 영혼이 깃든 限과 질곡桎梏의 서정이 ’청산도‘ 바닷가 모퉁이 섬에 서늘한 아름다움의 내력으로 전해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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