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임용된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신입 국가 보훈처 소속 공무원이다.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완전히 다른 역할로의 이행의 과정에서 여러가지 변화를 온몸으로 겪어내면서 개인적으로 적응해 내느라 노력하고 또 고생하고 있는 중이다. 나의 역할 변화에 따른 수많은 변화 중 가장 인상 깊은 변화 하나는 나의 위치가 창구 바깥에서 안쪽으로 옮겨온 변화 일 것이다.
나는 현재 분명 민원대 안의 세상에 속해있다. 허나 이런 명시적인 소속을 떠나, 내적으로는 아직 이 소속을 완전히 내집단화 해내지 못한 까닭에 아직은 안과 바깥의 어느 쪽에 분명하게 위치하지 못한, 애매모호한 자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는 애매모호함이라는 것이 긍정적인 가치로 여겨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지만, 나의 이 애매모호함이 되레 양 쪽 세계 모두를 보듬을 수 있는 시선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짧은 공직에서의 경험에서 느낀 감정과 생각들을 적어보고자 한다.
나의 임무는 사실 민원대에서 직접적으로 민원인을 응대하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매일 그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된다. 칸막이 하나를 두고서 양 측이 대결 아닌 대결을 펼치는데, 이 과정에서 양 측 모두의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곤 한다. 이러한 일을 간접적으로라도 겪게 되면 비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따뜻한 보훈을 캐치프레이즈로 삼고 있는 보훈처에서, 이러한 양쪽 세계 어느 누구에게도 따뜻하지 못한 이런 상황을 겪게 되면, 깊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 슬픈 상황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과연 민원인이 담당 공무원에게 개인적인 억하심정이 있어서 모진 말을 쏟아내는 것일까? 아니면 공무원이 민원인의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것일까?
이 상황을 좀 더 심층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일단 해당 기관으로 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민원인은 국가에서 설정해 놓은 절차에 응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충분히 표명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 모든 절차 전부를 부정하고 싶은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그 여러 절차 중 일부 측면이 그들에게 과한 요구를 하는 것 처럼 느껴지기에 이에 대해 항변하는 것일 뿐이다.
담당 공무원의 입장은 보다 더 분명하다. 그들의 입장에서도 고민 할 필요 없이 민원인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면 더욱 마음이 편할 것이다. 단지 규정상 불가능하기에,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지 못할 뿐이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자문해 본다. 이 슬픈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가?
나는 이 상황의 원인으로 불합리한 절차를 들고 싶다. 지금의 절차들이 처음부터 불합리했을 거라고 생각진 않는다. 과거엔 합리적이었을 절차들이 그 고유의 경직적인 속성 때문에, 세상의 변화 속도에 발맞추지 못한 까닭에 양 측이 조화를 상실한 결과, 불협화음을 자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규제와 절차를 원점에서 재검토 해볼 때이다. 현재의 규정들이 과연 합리적인가 자문해보고, 이 모든 절차들이 그저 타성에 매몰되어 버린 채로 과거들 답습하며 흘러가고 있던 것은 아닌지 다시 고민해 볼 때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불합리한 절차에 냉담해져 버린 민원인의 마음을 녹여 주고, 규정 속에 파리해져버린 일선 공무원에게 온기를 불어 넣어 어느 한쪽만 따뜻하다 못해 뜨거워 데일 것만 같은 따뜻함이 아닌, 양 쪽 모두가 따뜻해 질 수 있는, 진정 따뜻한 행정을 실현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