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살아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살아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 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 정현종(1939~) 중고교 시절부터 문학과 음악, 발레, 철학에 심취했다. 1959년 연세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으며, 대학신문인 <연세춘추>에 발표한 시가 국문과 박두진 교수의 눈에 띄어 「독무(獨舞)」와 「여름과 겨울의 노래」로 현대문학에서 3회 추천, 등단했다. 1966년에는 황동규, 박이도, 김화영 등과 함께 동인지 <사계>를 결성하여 활동했다. 1982년부터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2001년 제 1회 미당문학상, 대표작: 견딜 수 없네, 광휘의 속삭임, 섬, 날아라 버스야 등 시 읽기/ 윤 형 돈 시인의 시적 사유의 토대가 되는 것은 ‘둥근 것’에 대한 인식, 즉 둥글게 살기를 열망하는 것이다. 비록 꽃 피우지 못하는 무화과의 눈물이 있을지언정 최선의 노력과 의지로 열매 맺어야 행복한 삶이다.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서정주(1915~2000) 전북 고창, 아호는 미당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31년 중앙불교전문학교에서 수업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벽’이 당선, ‘시인부락’ 창간, 주간 1941년 첫 시집 ‘화사집’ 출간 1960년 동국대 교수 1977년 한국문인협회 회장 2000년 금관 문화훈장 생전에 15권의 시집 1000여편의 시를 남김 시읽기 /윤형돈 지존(至尊)은 함부로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동치미 국물처럼 속 시원한 서정주 시의 사상적 원숙미와 시적 구성력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의 작품을 무엄하게 건드리다니, 그러나 나는 대입 수능 수험생이 아니다. ‘내 마음 속 우리 님’이 외나무다리를 건널 때, 어여쁜 눈썹달이 뜨는 마음의 고향을 생각한다. 달뜬 마음을 달래면서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다가 결국은 헤어지고, 결별한 아픈 그림자를 밟고 돌아서야 할 때는 여지없이 ‘동지섣달’ 밤하늘에 초승달이 떴다, 움푹 팬 상처의 조각달은 너무 멀리 있어 춥고 스산한 심경을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동녘에 떠서
지친 몸 뉘여도 편하지 못한 나날 결국 소금기와 먼지 육신을 벗어두고 미래로 승천하는 꿈 지상엔 목 쉰 바람. 진순분( 1956~) 1990년 《경인일보》시조,《문학예술》 시등단. 시집 『안개꽃 은유』 『시간의 세포』 『바람의 뼈를 읽다』 『블루 마운틴』(현대시조 100인선)이 있음. 〈시조시학상〉〈수원문학작품상〉〈한국시학상〉〈경기도문학상〉등 수상. 현재 ‘수원문학’에서 진순분 시조교실 강의중 시읽기/ 윤형돈 삶의 무게에 지치고 고단한 육신은 침상에 ‘지친 몸 뉘여도’ 편치 않은 날들이 많다 염전 노예처럼 일하고 또 부리다 쓰러지고 그 여파로 온 몸에 누적된 ‘소금기’와 엉겨버린 염분 덩어리, 희뿌연 미세 ‘먼지’는 갈수록 극에 달해 공기청정기와 마스크를 쓰고 산소를 흡입하는 신인류의 출현을 득실거리게 만들었다. 그래도 소망하는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은 미래로 연결되어 지금 당장 벗어나지 못하는 현재를 가까스로 버티게 한다. 그렇게 시간의 뒤안길을 돌아온 ‘바람’이 시인의 영혼을 흔들고 지나간다. 큰소리를 지르거나 계속되는 마찰과 자극으로 이미 큰 상처를 입고 내분비질환으로 고생하다 급기야 목이 쉬어버린 지 오래다. 그러나 성대 결절이
먼 길 떠나기 위해 단잠에서 깼다 아직 어둠이 머뭇거리는 새벽하늘에 아침이 온다 희끗희끗 날리며 앉으며 순식간에 천지를 휘감아 화살 짓는 눈발 서로 부딛치며 떠밀리며 지상엔 하얀 폭풍이 인다. 나뭇가지 위의 새둥지가 툭 떨어지고 새들이 포롱포롱 황급히 떠난다 굳게 닫힌 성당 문이 삐걱 천장에 누워 있던 12사도가 모자이크를 털어내고 걸어 나온다 뚜벅뚜벅 눈 속으로 떠나간다 그 뒤를 내가 따라 나선다 열 둘 그리고 열 셋의 발자국이 하얀 폭풍 속으로 사라졌다 발자국 뒤로 남는 헛기침 소리 박이도(1938~) 1963년 경희대 국문과 동대학원 문학박사 1980~2003 경희대 국문과 교수 2008~ 월간 창조문예 주간, 박이도 시집 <어느 인생>, 시선집 <지상의 언어> 시읽기/ 윤형돈 저자는 詩選集 ‘지상의 언어’ 서문에 붙이는 단상에서 “신의 비의(秘儀)를 묵상하는 일이 나의 우주적 미래의 언어인 것을 나는 믿는다 지상의 언어, 나의 시들을 세상의 우표 한 장 붙여 풍선으로 띄워 버리자 민들레 씨앗으로 바람 속에 날려 버리자 내 영혼의 노을 길에 찾아갈 영원한 나라의 언어, 천상의 언어를 듣기 위해서”라고
밝덩굴/ 늙은이의 말들 여보게, 자네 걸음걸이가 왜 그런가? 이 사람 오늘 일은 오늘에 감사한다네 그러엄 올제의 칠보산 노을에도 무지개는 뜰 걸세 밝덩굴(1939~) 한글이름 짓기 회장을 역임했고 첫 시조집 ‘달 그림자’, 수필집 ‘잃어버린 달’, ‘백령도를 한 번 가 보세요, 마음이 울적할 땐’등을 펴냈다. 본명은 박병찬. 5남매 이름을 모두 한글로 지을 정도로 한글을 사랑하는 한글 학자로서 우리나라 최초로 아들 이름을 ‘박차고나온노미새미나’라는 열자 성명으로 지어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수원여고, 성포중학교장 등 교단에서 평생 외길을 걸어오면서 시수필집, 가족문집, 언어집, 희곡집 등을 총망라한 밝덩굴 전집을 남겼으며 녹조근정훈장과 수원문학대상, 경기문학인상, 경기예술(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 시읽기/ 윤형돈 첫 시조집 ‘달 그림자’를 기리는 축시를 지어 시인께 낭독해 드린 적이 있다 ‘이름만 들어봐도’란 제목인데, 나를 통과하는 상념이 다소 투박하지만 그냥 뻗어나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고향 마을 초가지붕에 박덩이 달덩이 된 사람이여, 넝쿨째 주렁주렁 복덩이 자손들과 한글 자모의 아버지 밝덩굴님은 ‘박차고나온노미새미나‘를 낳은 분이
첫사랑 시의 입맞춤 남몰래 화령전 붉은 기둥에 새겨놓고 나비 날아간 그 꽃밭 사잇길 누가 볼세라 잠 못 든 어린 날 최동호(1948~)시인, 평론가 수원 태생으로 고려대 대학원 현대문학박사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경남대 석좌교수 제 41대 한국 시인협회장 역임, 정지용시인 연구의 최고 권위자이며, ‘불꽃비단벌레’ ‘얼음 얼굴’ ‘수원남문언덕’ ‘공놀이하는 달마’ 특히 ‘병속의 바다’는 러시아판으로 최근 출판. 시읽기/ 윤형돈 성곽도시 수원 화성행궁 안에 정조의 어진을 모셔놓은 ‘화령전’이 있어 지나는 길손의 발걸음을 수시로 멈추게 한다. 화성에서 ‘華’자와 <시경>의 ‘돌아가 부모에게 문안하리라(歸寧父母)’라는 구절에서 ’寜‘자를 따서 이름 붙였다는 안내판 전언에 부응이라도 하듯 존경심의 발로인 하마비(下馬碑)가 우람한 서체로 과거와 현재의 이정표를 찍는다. 아뿔싸, 돌에 앉은 나비는 꽃보다 돌이 아름답다고 했던가! 언어를 넘어서는 그 어떤 것을 행복으로 삼는 시인이 이 아름다운 순간의 정황을 놓칠 리 없다. 우선, ’첫사랑의 입맞춤‘이 아니라 ’첫사랑 시의 입맞춤‘을 교묘히 배치해 놓은 첫 행에 탄성을 자아낸다. 첫사랑은 맨 처
귀향/ 헤르만 헤세 나는 이미 오랫동안 타향의 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지난 날의 무거운 짐 속에서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가는 곳마다 넋을 가라앉혀 주는 것을 찾았습니다 이제 훨씬 진정됐습니다 그러나 새로이 또 고통을 원하고 있습니다 오십시오, 낯익은 고통들이여, 나는 환락에 싫증이 났습니다 자, 우리들은 또다시 싸웁니다 가슴에 가슴을 부딪고 싸웁니다 헤르만 헤세(1877~1962) 독일, 스위스 성장에 대한 통렬한 성찰과 인간의 내면에 공존하는 양면성을 다룬 작품을 선보였으며, 동양의 철학 사상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데미안》의 한 구절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 구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와 사랑> <수레바퀴 밑에서>등은 청춘의 고뇌와 휴머니즘을 표현한 작품이다. 시읽기/ 윤형돈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어 / 부평 같은 내 신세가 혼자도 기막혀서 / 창문 열고 바라보니 하늘
네 마음에다 / 구상 요즘 멀쩡한 사람들 헛소리에 너 나 없이 놀아날까 두렵다 길은 장님에게 물어라 해답은 벙어리에게 들어라 시비는 귀머거리에게서 밝히라 진실은 바보에게서 구하라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길은 네 마음에다 물어라 해답은 네 마음에게 들어라 시비는 네 마음에서 밝히라 진실은 네 마음에다 구하라 구상 (1919~2002) 1919년 원산에서 태어나 1946년 동인시집 ‘응향(凝香)’을 발표하면서 시단에 데뷔하였으나 ‘응향’에 실린 시들이 반사회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1947년 북한을 탈출, 월남했다 특히 동시대의 화가였던 鄕友 이중섭과의 교류가 널리 감동적으로 회자된다. 시집으로는 <초토의 시> <믿음의 실상> <까마귀> <유치찬란> <모과 옹두리에도 사연이> <구상 시전집> 등이 있다. 시읽기/ 윤형돈 시인의 추상같은 구도자적인 메시지에 등골이 오싹하고 오금이 서늘하다. 의연한 ‘구상나무’가 한낱 삭정이 신세인 땔감나무에 호령하듯 시상(詩想) 전개의 파급은 일성호가(一聲胡笳)로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에 비견된다. 요즘 ‘멀쩡한 사람들’
겨울 사랑/ 문정희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에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문정희 시인 1947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출생. 동국대 국문과와 同 대학원 졸업. 서울여대 신학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 받음. 1969년 《월간문학》신인상 당선을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찔레』, 『아우내의 새』, 『남자를 위하여』를 비롯하여 한국 대표시인 100인 시선집 『어린 사랑에게』과 시극집 『도미』등 다수 있음. '현대문학상'과 '소월시문학상'을 수상. 현재: 동국대 명예교수 시 읽기 / 윤형돈 문정희 시인의 ‘겨울 사랑’ 방식은 지극히 간단하고 쉽다 나이 불문코 사랑을 소원하는 世人이면 누구나 단박 도전이 가능하다. 아니 간단하다 못해 단순명료하고 복잡하지 않다 사랑의 소품이나 배경도 특별한 도구나 절기가 필요한 게 아니다 그냥 ‘눈송이처럼’ 투명한 얼음 결정체가 내리는 게슴츠레한 겨울날이면 족하다. 좁은 문의 제롬처럼 내성적으로 머뭇거리거나 주저하고 꾸물거리거나 굼뜰 이유도 하등 필요 없다. 게다가 비극의
가면 간다고 말이나 하지 오면 온다고 말이나 말지 불숙이 왔다 휑하니 가고 차고 넘치는 소금 항아리에 반쯤이나 남은 달빛이 쳐들어간다. 가면 간다고 말이나 하지 벌렁대는 새가슴은 혹시나 행여나 기다려본다 작가 : 판타
1월/ 오세영 1월이 색깔이라면 아마도 흰색일 게다 아직 채색되지 않은 신의 캔버스 산도 희고 강물도 희고 꿈꾸는 짐승 같은 내 영혼의 이마도 희고 1월이 음악이라면 속삭이는 저음일 게다 아직 트이지 않은 신의 발성법 가지 끝에서 풀잎 끝에서 바람은 설레고 1월이 말씀이라면 어머니의 부드러운 육성일 게다 유년의 꿈길에서 문득 들려오는 그녀의 질책 “아가, 일어나거라 벌서 해가 떴단다.” 아! 1월은 침묵으로 맞이하는 눈부신 함성 오세영(吳世榮, 1942년 5월 2일~ )은 전남 영광에서 출생하여 광주, 전주 등지에서 청소년기를 보냈고 서울대 국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68년 ‘현대문학’에 〈잠깨는 추상〉이 추천 완료되면서 등단하였다. <반란하는 빛>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無明 戀詩>등 다수의 작품이 있고 시론집 <시의 길, 시인의 길>이 있음 <해설/ 윤형돈> 인간존재의 실존적 고뇌를 ‘無明‘이라는 깨달음을 통해 바람직한 삶을 추구하는 시인이 있다. 절제와 균형의 형이상학적 의미가 담긴 시를 써온 시인의 행간 곳곳에 정제된 삶의 은유가 살포
시대유감 하늘은 언제나 높으나 사람은 권력이 더 높다 한다. 하면 된다는 신념아래... 권력은 역사도 바꿀 수 있고 철학도 바꿀 수 있다고 무엇이던 하면 된다며 우러러 보지 않는 자를 경멸하며 지붕위의 고고한 한 마리 닭처럼 권력은 자신이 하늘보다 귀한 존자라고 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권력을 쥐고 태어나 세상의 모든 것이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합당하다고 굳게 믿고 있는 권력은 단 한 번도 왜 자신의 고집을 꺾어야만 하는 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오만한 권력에게 핑계는 자연스런 문고리이며 약속은 봄바람일 뿐이다. 오만한 권력을 향한 지적은 체제전복이며 종북이고 귀한 존자를 이해 못하는 하층민들의 아우성일 뿐 그럼에도 아우성이 촛불이 되고 촛불이 횃불이 되고 횃불이 용암처럼 변해서 하늘이 무섭고 땅이 두려우며 사람이 권력 앞에 있다는 것을 오만한 권력은 모른다 작자 : 판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