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면 공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에 동의할 국민은 없다. 그래서 국민들은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뛰어나가 각자의 주장을 펼치면서 공통적으로는 다시 한 번 공정을 요구했다. 조국 사태에 따른 광장정치는 우리사회가 여`야를 떠나 불공정하기 때문에 공정을 외친 것이다. 당을 떠나 옳은 쪽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 국민들이다. 최순실 사태에서 우리 국민은 당연하게도 옳은 쪽을 선택했고, 선택받은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가 지키지 못했던 ‘공정’을 약속했다. 그런데 조국장관 일가는 우리사회가 요구한 공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조국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라고만 외친다. 결과는 국민 파열음뿐이다. <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문재인 정부는 우리사회가 지난 수십 년간 요구해온 ‘공정사회’에 대한 요구를 조국 하나를 지키려다 파열음을 만들어 낸 것이다. 국민들은 이에 대한 사과를 받고 싶어 한다. 아직 박근혜-최순실로 이어지는 국정농단에 대한 치유와 상처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시 ‘공정사회를 비틀어 버린 것에 대한 허탈과 좌절, 실망이 지금 현 한국 국민들의 마음이다. 시민운동이나 정치운동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사람들, 수험생을 둔 부모의 아주 어려운 소원 중에 하나는 아마도 자녀가 서울대학교에서 훌륭한 성적으로 인턴을 하고 그 성적을 바탕으로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일 수 있다. 자녀가 잘 되길 바라는 부모라면 그렇게 할 것이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고등학생이 서울대에서 인턴을 할 수 있는 학생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대학생도 아닌 고등학생이 인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영광 그 이상일 수 있다. 그런데 조국의 자녀는 서울대에서 인턴을 했고 인턴생활을 했다는 증명서까지 받았는지 아닌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다만 본인들은 인턴을 했고 증명서를 받았다고 한다. 반대로 서울대 학생들은 아니라고 하며 거리에서 가짜 인턴증명서를 발급해 주는 퍼포먼스까지 열고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명 조국대전의 극히 일부분이다. 평범한 서민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그것에 대한 변명과 가십성 기사들이 서로를 물고 뜯고 있다. 이에 대해 국민들은 조국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람의 일상이 아닌 법무부 장관이라는 직위에 있는 사람의 도덕성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어떤 이들은 조국 장관의
젊은 청년들이 거리에 나와 구호를 외치는 광경은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보기 힘든 광경이 아니다. 젊어 진보가 아니라면 청년이 아니라는 말처럼 청년들의 이상과 꿈은 기성서대가 가진 것들을 아주 조금씩 변화시켜 먼 훗날에는 청년들의 꿈이 완성되어지기도 한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우리나라에서 젊은 청년들의 꿈이 가장 격렬했던 세대는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세대들 일 것이다. 이승만 독재를 기반으로 시작해서 군부독재가 가장 견고했던 시절, 무자비한 권력으로 국민을 통치하고 지배했던 세력들에 맞서 싸운 학생들의 꿈은 하나 된 조국과 자유대한민국이었다. 그리고 그 꿈은 수많은 희생위에 아주 서서히 이룩되었다. 우리는 그 꿈을 이룬 세대를 과거에는 386세대라고 했고, 어느 날에는 486이라했다. 그리고 최근에 그들은 586세대가 됐다. 50대이면서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60년대 생들, 이들은 현재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실질적인 기성세대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이 기성세대에게 종종 묻는다. “우리에게 기회의 평등이 있느냐?”고 묻는다. 누구의 아들은 국회의원의 아들이기 때문에 또는 누구의 자녀는 정부 고위직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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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모인 100만이 넘는 인파가 서초동 반포대로를 가득 메운 토요일 오후, 거리에 나선 사람들은 검찰개혁을 외치며 다른 한 손에는 ‘조국수호’라는 다소 어처구니없는 피켓을 들었다. 조국 장관은 제거 혹은 수호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대통령이 임명한 많은 장관 중에 한 명일 뿐이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한 달 동안 야당은 ‘조국사퇴’를 요구했고, 여당은 ‘조국수호’를 외쳤다. 무려 한 달 동안 여당과 야당은 한 일이 없다. 서민들은 만져보기 어려운 금액을 세비로 받아가면서 여`야 모두 이구동성으로 조국 장관만 쳐다봤다. 일부 야당 인사들은 조국 장관임명을 반대한다며 삭발까지 감행했다. 한 마디로 어이가 없다. ‘조국’이라는 블랙홀에 여`야가 모두 빨려 들어가 주위를 돌아보지도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고위 정치권이 그러고 있는 사이에 일본은 우리와의 자존심 대결에 이기고자 경제전쟁을 끝까지 고집하고 있으며 미국과 중국은 관세전쟁에 이어 금융전쟁으로 전선을 확대하고 있는 사이에도 말이다. 관세전쟁 하나만으로 우리나라는 힘들다. 미국은 우리나라 무역 총량의 21%를 책임지고 있고, 중국은 31%를 책임지고 있다.
진한 시대에 ‘진식’이란 학덕이 높은 선비가 있었다. 어느 날 그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 선비 진식은 당황하지 않고 대들보 위에 숨어 있던 도둑을 군자라 부르며 가르침을 주고 점잖게 회유했다는 일화가 있다. 훗날 이 이야기는 고사성어로 만들어져 대들보위의 도둑을 ‘양상군자’라고 하며, 오늘날에는 시민들이 많은 정치인들을 비꼬는 말로 종종 사용한다. 특히 지방단체장들이 겉으로는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주목하자면서 속으로는 자신의 선거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만 조직을 만들어 예산을 지원해 주는 일종의 세금 도둑질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들을 양상군자라고 표현한다. <임숙영의 시사 칼럼> 경기 남부에서는 대표적인 양상군자가 바로 곽상욱 오산시장이다. 아니 양상군자라는 표현으로는 조금 부족할 수도 있다. 자신이 지불해야 할 사적 재판비용과 위자료를 세금으로 처리하고, 범죄를 저질러 결코 일반적으로는 등용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선거캠프에 있었었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공무를 볼 수 있도록 해주는 등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행태를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다. 지난 7월30일 이후 불거진 곽 시장의 불륜 사실은 오산시민을 너무 부끄럽게 만들었다.
주머니 속의 송곳(囊中之錐)은 가두어 놓아도 그 끝이 뾰족해 튀어 나오기 마련이다. 반대로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矗石逢釘).라는 말도 있다. 모두 조국 법무부 장관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사법개혁을 하겠다는 의지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조국 장관만한 인재가 없다고들 한다. <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민주당 일각에서는 조국 장관을 가리켜 한 마디로 ‘낭중지추’ 그 자체다고 말한다. 법무부에 조국 장관이 있는 것 자체가 사법개혁의 시작이라는 견해다. 그러나 그의 뾰족함은 많은 정을 맞았다. 맞고 또 맞았다. 뾰족함이 무디어질 정도로 언론과 야당에서 두드리고 두드렸다. 그것이 그를 더 단단하게 강철처럼 만들었는지 아니면 뾰족함이 무디어졌는지는 시간을 두고 봐야할 일이 됐다. 그러나 조국 장관의 의지에 대한 여당과 야당의 공방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이 형평성의 문제다. 사회적 형평성이 기초되지 않은 사람이 법무부 장관의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생각해 볼 문제다. 시민들은 조국 장관이 국민 눈높이와 다른 삶을 살아왔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평범한 시민들과는 다른 높은 위치에서 모든 것을 누린 강남좌파에 대해 이
조국 법무부장관의 죄는 드러난 것이 없다. 수많은 언론보도와 의혹제기가 있었지만 사실상의 실체가 불분명하고 뚜렷하게 범죄라고 할 만한 것들은 없었다. 그럼에도 여론은 조국 장관의 임명에 대해 반대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 이유가 뭘까? 실체 없는 범죄에 대해 국민들이 질타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상대적인 박탈감이다. 가진 것 다 가진 사람에 대한 부러움과 무엇이던 할 수 있는 여유가 서민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대학의 수시입학이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정시가 아닌 수시는 학생들의 활동 영역을 크게 반영하는 입시제도 이다. 그래서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 특히 수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나름의 활동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 중에는 조국장관의 딸처럼 의학논문을 준비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학부모들은 자녀의 입시준비를 위해 자녀들에게 영화, 시나리오, 봉사활동 등을 준비시키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활동들에는 자본의 힘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것이 있다. 오죽하면 돈 있으면 수시, 없으면 정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범죄는 아니라지만 한국의 일부 힘과 권력을 지닌 사회지도층
영어를 잘하는 고등학교 2학년생이 의학논문을 쓰고 제1저자가 됐다. 이어 이 논문을 수시입학에 활용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국민들이 많다. 해당 학생이 천재이었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천재는 아니었다는 사실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 그러나 성적은 신통치 않은 학생 정도이었다고 한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문제의 본질에 앞서 정치권은 이 문제에 대해 왜 국민들이 분노하는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우선 한국적인 상황, 한국의 사회분위기에서 절대 공정해야 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병역의 문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입시의 문제다. 병역은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라면 모두 해당하는 사항이다. 그래서 병역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공정한 심사다. 가끔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힘으로 병역을 회피하는 이들이 사회적 지탄을 받는 것은 한국에서 흔한 일이다. 그 이유는 공정해야 할 의무에 열외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정하는 순간 대한민국은 공정한 세상이 아닌 것이 된다. 병역기피를 목적으로 이중 국적을 취득한 ‘스티브 유’가 한국사회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입시의 문제도 비슷하다. 대한민
오산의 잃어버린 10년을 만든 장본인들인 현 오산의 집권 민주당이다. 10년 전만해도 화성시와 오산시를 비교하면 오산의 사회적 자본력이 화성시보다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오산은 화성시를 우러러보는 위치로 추락했다. 그리고 오산시민들은 그들 스스로 “오산은 너무 작다”며 자조적인 말들을 자주하곤 한다. <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실제로 오산 구석구석을 돌아보면 아직도 개발과 정비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지천임에도 오산시는 도시정비를 하지 않았다. 무려 10년간 방치된 곳이 지천에 널려있다. 그들 스스로 너무 작다고 자조적인 한 숨은 쉬면서 도시를 정비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행정구역상 오산에 속하는 양산과 외삼미동은 어는 사이에 화성 병점의 일부가 되었다. 오산시의 도시정비 포가ㅣ는 독산성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사적 140호인 독산성은 오산시의 자랑이라고 하면서도 독산성을 설명하는 그 무엇하나가 없다. 수원시가 사적3호인 ‘수원화성’의 쓰임새와 구조, 그리고 문화`예술적 가치를 설명하는데 필요한 자료를 만들어 수도권 시민들에게 보급하는 동안 오산시는 독산성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조차 그들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전국을 유랑하는 시대라고 하지만 오산에서는 예외다. 오산 민주당 선거 관계자들의 자녀들은 기간제로 들어가 무기직으로 자리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시험도 딱 한 과목이고, 면접점수가 60%인 오산시 산하 기관에는 선거와 관련된 자들이 넘쳐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이에 대해 토를 달지 않는다. <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뿐만 아니다. 전직 시장에게는 기간 한정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매월 600만원씩 급여를 주는 일자리가 버젓이 생기고, 그의 자녀들 까지 민주당이 주도하는 의회에서 사업을 밀어주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야당 의원들은 책상을 치며 “너무하는 것 아니냐!”며 화를 내지만 다수결이 원칙인 의회에서는 시민의 눈치 같은 것은 염두에도 없다. 급기야 민주당 소속 시장의 불륜의혹이 전국적으로 기사화 되고, 이에 대한 시민사회의 비난이 거세지고 있음에도 민주당은 끝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오히려 민주당과 소속 의원들 일부는 ‘시장의 사생활’이라며 시장을 감싸고돌면서 ‘정치적 공세’를 운운하고 있을 정도다. 이 정도면 오산 민주당이 미쳤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정의당이라고 다르지 않다. 민주당 2중
일본의 경제침략이 현실화 됐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것 자체는 그리 큰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침략의 전초전 또는 본격적인 침략을 위한 사전조치라는 것에 국민들이 고통을 감수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그럼에도 일부 정치권은 단지 집권여당을 비난하기 위한 대응공세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본의 경제침략이 현 정부의 ‘무능’때문이라는 비난, “반일 감정을 부추기지 말라”는 야당 정치인들의 목소리는 진정 누구를 위한 목소리인지 토악질이 나올 정도다. 지난 임진왜란 당시 부산 동래성이 함락 되었을 당시, 한양에 있던 선조의 목을 베어 일본에게 가져다 바쳤다면 그들의 침략은 멈추었을까?, 아니면 한일합방을 목전에 둔 시점에, 우리 스스로 ‘고종’의 목을 치고, 대원군을 참수 했다면 일본의 한일합방은 멈추었을까? 모두가 아니라고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들 일본은 절대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이 다른 나라, 특히 한국의 정치 상황을 배려하는 그런 좋은 나라이었던가? 임진왜란에 이어 정유재란이 발생하자 일본은 조선의 일부 정치인들을 설득해 충무공 이순신